시 · 시 해설/시 해설 73

<시> 청녀/김인숙

청녀(靑女)* / 김인숙  청녀가 오는 아침이면 하얀 면도날이 천지만물에 곤두선다 녹고 싶었지만 녹여 주는 자가 없어 간혹 한여름 냉동고 인부의 눈썹 위에도 앉는 청녀 처음을 처음으로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청녀는 얼음 서린 표정을 보전한다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또 잊어버리면서날마다 변하고 바꾸면서 사는데 살아 있지 않은 자는 살아 있지 않으므로잠 자지 않고유리창 위 꽃잎으로 쩍쩍 피면서청녀는 살아있는 주검으로 꼿꼿하다 떠나가는 가을을 얼리고 사람들을 얼리지만눈처럼 덮거나 눕히는 것이 아니라선 채로 하얗게 사람이 사람을 증거케 한다 청녀는 가시가 아니지만 가시가 되기도 하여 지혜로운 자는 함부로 웃지 않아서 높은 방석을 얻고 청녀를 두려워하는 자는 복이 있으나 어리석은 자는 웃을 때를 몰라 가시에 찔리고..

<시 감상> 시로 읽는 철학/김인숙(시인)_김주완 시, <주역 서문을 읽다> 감상

2018년 봄호(통권 97호) 수록 - 기획연재- 동인의 추천시  [시] 주역 서문을 읽다   ― 경당일기  을묘년乙卯年(1615년) 7월 병오丙午(1일)  /   김주완    400세 조선 경당敬堂이 900세 송나라 정이程頤를 만나는 아침, 어제는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굵은 비의 혀가 만 가지 단서를 일으켜 참과 거짓의 경계를 가르니 지극히 큰 밝음이 어둠을 밀어냈다, 꿈속에서 서애 류 선생을 뵈었다 닭이 울어 새벽에 깨었다, 다시 잠들 수 없어 주역 서문을 읽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걸어 묻는다, 선생의 선생은 말을 콩처럼 골라서 답변을 하는데 분별이 어렵다, 하늘과 땅의 정적이 둥글게 부풀어 일어서고 있다 오래도록 가물다가 비가 내리니 모든 백성이 모를 옮겨 심는데 검은 머리 아이와 흰머리 ..

<시 감상> 되돌아 나오는 슬픔/김선자(시인)_김주완 시, <나무는 나무의 몸을 모르고> 감상

2018년 가을호(통권 99호) 수록 - 기획연재- 동인의 추천시 [시] 나무는 나무의 몸을 모르고/김주완 강의 서쪽에 그녀의 집이 있네 자동차로는 못가는 길 걸어서 가야만 하네 철교를 지나서 심장을 움켜쥐고 굽이굽이 꺾어들면 휘영청 돌아가는 한적한 길이 있네 인적 드문 하늘길 강길 높이 뜬 둘레길이네 눈 내린 새벽이면 저벅저벅 발자국이 푸른 도장으로 찍힌다네 갓 감고 나온 숱 많은 그녀 머릿결 늘어질 때쯤 보름달 대문은 열려 있지만 조용히 기웃거리다가 밤 깊은 사람은 돌아오네 나무는 나무의 몸을 모르고 성스러운 집은 잡인을 금하느니 스스로 높이 받들어야 존귀해지기 때문이네 몰래 가슴에 담아 오기만 해야 하네 내가 남긴 발자국 조용히 닦아내며 안개처럼 스러지며 돌아와야 하네 집이 아름다운 것은 높이 혼자..

이연주 제3시집 <우비>牛屝 - (해설) 프리즘을 통과한 찬란한 스펙트럼의 시편

우비(문학시티 시선집 24)(양장본 HardCover)이연주 제3시집 저자 이연주 출판 문학시티 | 2021.4.20. 페이지수 184 | 사이즈 140*217mm 판매가 서적 10,800원 책소개 표제 시 「우비」는 서정적 감성으로 도덕적 가치의 본질을 노래한 철학 시라 할 수 있다.이연주 시인은 ‘시’라는 그릇에 삶의 풍경들을 담아낸다. 프리즘을 통과한 스펙트럼처럼 시적 굴절을 통해서 나오는 색깔의 분산은 다양하다. 굵었다가 가늘었다가 선명하였다가 몽환적이었다가 진하였다가 여렸다가 하는 색의 띠에는 깊은 사유가 깔려 있거나 따뜻한 사랑이 녹아 있거나 불가적 인연 생기에 이어져 있거나 도가적 초월에 닿아 있다. 세상만사에서 온기를 느끼는 시인은 스스로 만물을 시로 녹이는 용광로가 된다. 어떤 소재나 주..

서상은 시집 <호미곶 별사> 해설 - 고절하면서도 장엄한 별사의 시/김주완(시인, 철학박사)

해설 고절(高絶)하면서도 장엄한 별사(別辭)의 시 김주완(시인, 철학박사) 1. 고절(高&#32085;)하면서도 장엄한 별사(別辭)의 시 ‘별사(別辭)’란 말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다. ‘이별의 말’이든 ‘남은 다른 말’이든 간에 그것은 계속되는 말이 아니고 끝나는 말, 마무리하는 말이기 때문이..

박찬선 시집 <우리도 사람입니다> 해설 - 사람을 모시는 신인(神人)의 시/김주완(시인, 철학박사)

해설 사람을 모시는 신인(神人)의 시 김주완(시인, 철학박사) 1. 열쇳말 모실 시(侍) 이 시집을 열고 들어가는 열쇳말은 모실 시(侍) 자이다. 근곡 박찬선 시인은 상주를 모시고 낙동강을 모시고 동학을 모신다. 상주와 낙동강과 동학 - 이는 시인이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시적 주제이며 시의..

김종섭 제11시집 <시, 관음전에 들다> 해설- 순수 서정으로 가는 탈속의 시업/김주완(시인, 철학박사)

[해설] 순수 서정으로 가는 탈속의 시업 김주완(시인, 철학박사) 1. 정신 11권 김종섭 제11시집 『시(詩), 관음에 들다』를 펼친다. 열한 권이라…, 우선 숫자에 압도당한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시집 한 권 내놓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과정도 과정이려니와 심적&#8226;물적 부담..

[김주완 시집 <그늘의 정체> 표4 추천글]_김유중(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_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김주완 시집 &lt;그늘의 정체&gt; &lt;표4 글&gt; 존재하는 것들 속에 내재하는 슬픔과, 그것을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이 차분하고 절제된 어조로 교직된 시집이다. 이러한 구도의 본바탕은 대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 출발한 것일진대, 이 연민과 사랑은 내게 형이상학적으로도 형이하학적..

[김주완 시집 <그늘의 정체> 해설]_낭만적 발상과 시적 역발상_송희복(문학평론가/진주교대 교수)

김주완 시집 &lt;그늘의 정체&gt; [해설] 낭만적 발상과 시적 역발상 송 희 복(문학평론가ㆍ진주교대 교수) 서정시가 죽은 시대라고 한다. 현대시에 있어서 서정시의 위상은 언제나 유치하고 천박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본다. 서정시가 감정 중심의 언어로 기울여져 있기 때문일까? 그..

[김인숙 시집 <소금을 꾸러 갔다> 표 4 추천글]_박덕규(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_송희복(문학평론가/진주교대 교수

표4글 김인숙의 시는 대개 짧지 않다. 대상에 내재되어 있는 시간의 층을 더듬고 있기 때문이다. 유년을 회상하는 어른, 떠나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철새, 꽃이 된 씨앗 등 눈에 보이는 현재 정황을 그것을 가능하게 한 오랜 경험 내용과 더불어 포착하고 서술한다. 그 지점으로부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