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음악·시낭송 304

기다리지 마라(시:김주완/낭송:안재란)

기다리지 마라 (시) 김주완/(낭송) 안재란 기다리지 마라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이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은 오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은 오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 슬퍼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아도 남을 것은 남고 아무리 슬퍼해도 갈 것은 간다 기다림이 아프지 않을 때 기다려라 오지 않아도 괜찮을 때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이 좋을 때 그때 기다려라 기다림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슬픔은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처럼 그냥 기다리는 것이 기다림이다 비 오는 날의 염소 새끼처럼 그냥 눈망울만 굴리는 것이 슬픔이다 먼저 간 이들은 모두 홀로 걸어서 언덕을 올라갔다 기다림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향해 기다림을 가슴에 안고 걸어갔다 슬픔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슬픔..

아카시아꽃 1 (시:김주완/낭송:김미선)

아카시아꽃 1 (시:김주완/낭송:김미선) 아카시아 나무껍질은 할머니 손등 같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멀건 언덕에서 땅 밑으로 질기게 뿌리 벋으며 모진 생명, 바람 앞에 마주 서는 강단剛斷, 홈실할매는 나이 스물다섯에 홀로 되었다 무오년戊午年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하루 사이로 먼저 보내고 4대 독자 한 살배기 외아들과 시아버지, 달랑 세 식구만 남아 쇠락하는 가문을 붙들고 버텼다 장하게도 꼬장꼬장 일으켜 세웠다 여든 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시신을 염습할 때 꼬부라진 등뼈에서는 뚜둑뚜둑 소리가 났다 결빙된 고초가 구슬처럼 부서지는 소리였다 조선환여승람 이십삼 쪽에 효부 이 씨로 올라 아직까지 살아있는 홈실할매, 힘이 들었는가, 무겁게 늘어져 있는 아카시아 꽃 주저리, 그러나 무성한 밀원 ..

노을(시:김명수/낭송:이경희)

노을 김명수 언제부터인가 너를 무척 사랑했다 언제나 나를 보고 화사한 얼굴로 다가 오고 있었지 버리는 만큼 아름다운 줄 어떻게 알았을까 서녘 하늘에 가득 찬 노을이 너와 나의 시간을 알리는 걸까 머물 시간도 없어 내 지난 시간들을 색칠하는 하루의 끝 나뭇가지 위에 흔들리는 함성 나의 과거는 무엇인가 무릎까지 차오는 시간의 흔적 아, 거기 사랑이 보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약력) 충남 당진 출생,《현대시학》1980년 천료. 시집『질경이꽃』『어느 농부의 일기』등 다수. 충남시인협회장, 대전오류초등학교장 역임. 웅진문학상 등 다수 수상.

으름, 속살을 보이다(시:구재기/낭송:김동영)

으름, 속살을 보이다 구재기 똑바로 몸을 돌려 맨 처음 태어난 자리 그대로 바로 바라볼 수 있으랴 이름과 모양에 마음하는 일 한지韓紙에 물이 스며들듯 아무려면 말할 것 하나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면, 온갖 작은 바람결에도 쫓기지 않는다 무얼 그리도 잇달아 간직하려고 애를 쓸 것인가 저 음흉한 담자색 꽃숭어리 찐득한 기름에 절여들 듯 본디 지니고 있는 생김이 저러하련가 꽃의 향기는 지나는 바람을 잡으려 하지만 빛 좋은 꽃숭어리, 그림자를 멀리 두려하지 않는다 그렇다, 향기 없다 하여도 꽃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깊고 그윽하더니 이리 사랑스럽고, 저리 곱살스러운 곱다란 꽃숭어리 이미 구속 되지 아니하고 한 번 더 눈을 돌리고 보면 푸른 가을하늘 밑의 시공에는 촉촉하니 혀끝으로 젖어드는 잘 익은 으름 하나 청초하고..

나무가 나무에게 건너갈 때(시:소재호/낭송:이경희)

나무가 나무에게 건너갈 때 소재호 나무가 나무에게 건너갈 떄 하늘의 허락 없이는 허공을 가로지르지 못해 나이테 안에 꼭꼭 숨겨 속삭임 한 아름씩 거느리고 나무가 나무에게 그리움 뻗으면 숲은 사연 깊이깊이 밤이 차 오르는 것이라네 나무가 나무에게 건너갈 떄 하늘이 눈감아준 내력으로 잠시잠시 표나게 나부끼기도 하고 세월을 수직으로 세우며 자꾸 옆구리로는 갈비뼈 내어 으스러져라 하고 서로 보듬어 나我 무無 연리지가 되기도 하지만 하늘이 조짐해둔 운명처럼 틀림없는 노을빛이 오고 무에서 존재로 일어나 나중에는 사랑의 시늉을 붉으레 허공에 쏟아 놓는 것이라네 몸 한 번 가누는 데도 몇 백년이 걸리는 조바심 뭇 계절마다 처음 빛깔로 빚고 바람도 끌어다 소리도 일구며 제 스스로 시詩답게 옹그리며 읊어 맨 마지막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