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칼럼 · 카툰에세이 127

<수필> 청녀 / 김인숙

계간 2025 봄/통권 125호, 도서출판 시와산문사, 2025.03.01., 280~283쪽.  청녀(靑女)김인숙 [1] 청녀(靑女)의 글자적 의미는 '푸른 여인'이다. 사전적 의미는 “서리를 맡아 다스린다는 신” 또는 “서리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청녀는 서리와 연관된 말 또는 서리 그 자체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의 아침 들녘에 나가 보면 하얗게 서리가 내려 마치 눈이 온 듯한 풍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서리는 ‘하얀 색깔’인데 왜 '푸른 여인'이라 하는가?> 서리의 신은 왜 남성이 아니고 여성인가?>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중국어의 ‘靑女’나 일본어의 ‘せいじょ’는 우리 말의 청녀와 같은 의미이다. 다만 여기서는 서리뿐만 아니라 눈(雪)의 의미도 더하고 있다. 러시아어 ‘этн. дух..

<산문> 왜관 첨상(瞻想)/김주완

왜관 첨상(瞻想) 김주완 ○ 프롤로그 이 글은 왜관에 대한 술회이다. 소설이나 기록이 아니다. 주장이나 논증도 아니다. 다만 나의 기억과 회상 그리고 가벼운 상념(想念)을 따라가며 서술하는 작은 소묘(素描)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누구든지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그것은 그들의 서술 지평에서는 전적으로 옳을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토론이나 논쟁에 대해서도 나는 미리 문을 닫는다.이 글의 시간축은 내가 태어난 1949년부터 현재인 2024년까지 75년 동안이며 공간축은 나의 출생지인 왜관읍과 칠곡군 일원이다. ○ 아름다운 칠곡 왜관은 1914년 이래 칠곡군의 군청 소재지이다. 행정구역 안의 8개 읍면 가운데 제일의 위상을 아직은 지키고 있다. 그러나 칠곡군은 197..

오래된 약속/김주완

동의대학교 명예교수인 강손근 박사가 귀목(貴木)에 양각으로 새긴 서각 현판 居敬窮理(거경궁리)>를 보내왔다. 서로 소식이 막힌 지가 오래되었는데 무려 16년 만의 연락이다. 허허 웃으면서 강 교수는 "아마 잊었을 것 같은데 오래전에 한 선물 약속을 이제야 지킨다"라고 했다. 내용을 풀어 달라고, 동양철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한국 현대철학을 대표하는 대구교육대의 장윤수 박사에게 현판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좋은 선물을 받았다”며 축하해 주면서 “작품이 아주 좋다”고 높이 평가했다. 까마득한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오른다. 2010년에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나는 고향 마을로 돌아가 칠곡군수에 출마하기로 마음먹고 사전 준비를 위하여 재직하던 대학에서 선거 1년 전에 미리 명예퇴직하였다..

[수필]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김주완

[수필] 2022년 가을호(통권 115호) 발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김주완 시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 중의 하나가 라는 명제이다. M. 하이데거가 처음으로 규정한 이 명제는 그러나 시 창작에만 한정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이 명제는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다. 하이데거는 R. M. 릴케의 20주기를 맞은 1946년에 릴케를 회상하고 그의 시를 분석하는 논문 한 편을 조그마한 교회에서 발표한다. 논문의 제목은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이며 이 논문 가운데서 하이데거 자신의 유명한 명제 가 최초로 등장한다. 하이데거는 철학자이면서 그 자신도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릴케의 시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가운데서 현존재를 분석하는 하이데거 자신의 존재론이 구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인 릴케도 철학을 ..

[교육칼럼] 아름다운 하루/김주완

아름다운 하루 김주완(시인, 철학박사, 전 대구한의대 교수) 아름다운 하루를 살자>, 눈뜨자마자 이런 다짐을 루틴으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역동적으로 살자', '순리적으로 살자' 이러한 다짐도 있을 수 있다. 전자는 동물적이고 후자는 식물적이다. '보람차게 살자', '신나게 살자' 이런 다짐은 의욕적이긴 하지만 진부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남으로부터 피해를 입지도 말자' 이런 다짐은 도덕적이거나 전투적이다. 무릇 다짐이라는 다짐들에는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힘이 많이 들어가면 어느새 인간은 사라지고 힘만 남는다. 아름답게 살자>는 자기 다짐은 부드럽다. 도덕적이거나 전투적이지 않고 진부하지도 않다. 아름다운 하루>는 어떻게 살아야 만들어지는 것일까? 삶은 본질적으로 물질 반, 정..

나의 이름들/김주완

나의 이름들 김주완 나는 의성김씨 33세손, 의성군 25세손, 문절공 21세손, 관란재공 14세손, 노회당 6세손이다. 나는 몇 개의 이름을 가지고 한 생을 살았다. 관명은 김주완(金柱完)이다. 1949년 출생과 함께 불린 이름으로 호적과 주민등록 등 공부상에 등재된 공식적인 이름이다. 주로 이 이름으로 나는 한 생을 살아왔다. 글자의 뜻은 , , 이다. 풀어 쓰면 정도의 뜻이 된다. 또는 의 뜻도 된다. 강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쇠기둥처럼 완전하게 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었겠지만 때로는 뒤뚱거리거나 넘어지면서 살았다.  자(字)는 대산(大山)이다. 아버지께서 족보에 그렇게 올려놓으셨다. 시대가 바뀌면서 자를 부르는 문화가 사라짐으로써 단 한 번도 남으로부터 불린 일이 없..

아호 청고(靑皐)/김주완

아호 청고(靑皐) 김주완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장윤수 박사가 나의 아호를 지어 주었다. 청고(靑皐), 우리말로는 푸른 언덕>이다. 장윤수 박사와 나는 경북대 철학과 동문 사이이다. 학교를 먼저 다녔다는 이유로 내가 선배가 되는데 기수 차이가 제법 나서 재학 시절에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대한철학회에서 만나 여러 일들을 같이 하면서 의기투합하여 가까워졌는데 그 우정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동양 철학(유가 철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이나 대만에서도 잘 알려진 석학이다.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중국 시베이대학 객좌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키는 작은 편..

[강변 산책] 물가를 걷다 _ 김주완

창간호, [강변 산책] _ 물가를 걷다/김주완, 낙동강문학관 발행, 2022년 10월 25일, 29~52쪽. [강변 산책] 물가를 걷다 김주완 더보기 이 글은 철학 에세이를 쓴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물가에서 물을 건너며 시와 철학을 섭렵하는 글이 되었다. 집을 나선다. 물가를 걷는다. 허리를 펴고 팔을 흔들며 가볍고 꼿꼿하게 독일 병정처럼 걷는다. 너무 딱딱한 보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걷는 나는 경쾌하다. 자세가 경쾌하면 마음도 산뜻해진다. 처음에는 내가 전방을 열면서 걷는데 나중에는 내가 전방으로 끌려 들어가며 걷다가 마침내 전방과 내가 하나가 되어 걷는다. 바람을 가르며 걷는다. 바람은 계절마다 불지만 그때마다 차거나 따뜻하거나 더운 바람이다. 바람, 나, 길, 물이 함께 살아 있음..

[강의 원고] 낭송예술지도사 1급 명인 초청 특강 - 사람을 치유하는 시 낭송/김주완

일시:2021.10.31.(일)14:00~16:00 장소:동리목월문학관 사람을 치유하는 시 낭송 김주완 ? 사람 ○ - 끝이 없는 문제/광범하고 어려운 문제 :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 나훈아 노래 ex) 생물학적 인간학/의학적 인간학/경제학적 인간학/철학적 인간학/…… ○ 사람 ➜ 삶 // 사람 = 살아가는 존재 ○ 니체 ; (불꽃=심장의 박동/불꽃이 다 타 버리면=죽음) -심장이 뜨거운 자 = 더 많이, 더 열심히 사는 자 ○ 사람은 살아가는 자(者)이다 = 생명(生命, 날 생/목숨 명)=살아있는 목숨 ○ 생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 생명은 생명활동이다 ○ 죽은 자도, 태어날 자도 모두 사는 존재이다. ▷ 죽은 자는 살다 간 사람이다. ▷ 태어날 자는 살러 올 사람이다. **..

[특강 원고] 시와 언어

시와 언어 : M.하이데거와 N.하르트만의 존재론적 해명 김 주 완(시인/철학박사) 시란 무엇인가? ○ 해답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 사람들은 자식을 잘 만들고 잘 키운다. 시인들은 시를 잘 쓴다. 모든 예술가들이 예술창작을 잘 한다. 善琴奕者不視譜(선금혁자불시보) (淸 魏源 ) 거문고나 바둑에 뛰어난 이는 악보나 기보에 매달리지 않는다. 시, 음악, 美에 대한 동양적 정의 ○ 不學詩 無以言(불학시 무이언)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답게) 말할 것이 없다 不學禮 無以立(불학례 무이립)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 ( 論語 ) ○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흥어시 입어예 성어악) (論語 卷8 泰伯-8) 시로써 즐거운 감정을 일으키고 예로써 인격을 세우며 음악으로 완성된다 ○ 爲之楽, 以宣其湮鬱(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