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녀(靑女)* / 김인숙 청녀가 오는 아침이면 하얀 면도날이 천지만물에 곤두선다 녹고 싶었지만 녹여 주는 자가 없어 간혹 한여름 냉동고 인부의 눈썹 위에도 앉는 청녀 처음을 처음으로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청녀는 얼음 서린 표정을 보전한다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또 잊어버리면서날마다 변하고 바꾸면서 사는데 살아 있지 않은 자는 살아 있지 않으므로잠 자지 않고유리창 위 꽃잎으로 쩍쩍 피면서청녀는 살아있는 주검으로 꼿꼿하다 떠나가는 가을을 얼리고 사람들을 얼리지만눈처럼 덮거나 눕히는 것이 아니라선 채로 하얗게 사람이 사람을 증거케 한다 청녀는 가시가 아니지만 가시가 되기도 하여 지혜로운 자는 함부로 웃지 않아서 높은 방석을 얻고 청녀를 두려워하는 자는 복이 있으나 어리석은 자는 웃을 때를 몰라 가시에 찔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