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겨울 원행 / 김주완
겨울은 길고 길은 멀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나섰습니다
문득 길에 던져져, 가지 않을 수 없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버리고 온 얼어터진 신발이 몇 켤레인지 모릅니다
어디쯤에 아직도 헤진 그대로 있겠는지요
눈 쌓인 나뭇가지에 햇살이 내려와 뽀득뽀득
눈부시게 노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새 몇 마리 날아와 헤살을 놓는 것도 보았습니다
푸슬푸슬 떨어져 날리던 눈가루가 모래알처럼 슬펐습니다
강의 얼음장을 건너면서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고
탱자나무 울타리 길을 지날 때는
붉은 목도리가 가시에 걸려 내버려 두고 왔습니다
만장처럼 펄럭이고 있을는지요
낮은 짧고 밤은 길었습니다
어둠 속 검은 숲의 침묵은 바다처럼 무거웠고
창날 같은 바람이 온몸으로 꽂혀 들었습니다
소리,
음산한 바람소리는 흉흉하게 날카로웠습니다
먼 불빛 가물거리는 방향으로
끝나지 않는 길을 작정 없이 혼자 걸었습니다
이가 떨리는 온 세상이 그저 추위뿐인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여주는 것만을 보는 눈을 달고
사람들은 모두 어둠과 추위를 피해
동굴 속으로 몰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둠을 꿰뚫는 푸른 시력이
서걱서걱 얼어붙은 내 몸을 갉아먹었습니다
가는 길이 어디쯤서 끝날지 모릅니다
가슴에 넣어 온 구운 돌덩이가 식어 갑니다
남은 온기가 그렇게 다정하고 소중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품이 그랬을 것입니다
얼어서 떨어져 나가는
손도 발도 얼굴도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한 발짝씩 발걸음이 떼어져 나가므로
나는 아직 걷고 있습니다
내가 아닌 다리만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어둔 천막에 뚫린 잔구멍처럼, 별들은 까물까물 차갑게 웃고
보름달은 물끄러미 방관하고 있습니다
가슴의 온기가 있는 대로 다 빠져나가고
빈 벌판 어디쯤 마른 나무토막처럼 문득 툭 쓰러지면
바로 거기가 내 길의 끝이겠지요
시작이 내 것이 아니었기에
끝도 내가 내는 것은 아니랍니다
먼 길은 끝나지 않는 겨울 속으로만 나 있다지요
<2013.01.30.수. 칠곡신문 4면 발표>
<2013.10. '대구문협대표작선집' 1권 171쪽 수록>
2016 동해남부시 제40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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