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압화押花 / 김주완[2012.07.24.]

김주완 2012. 7. 24. 15:47

 

        [시]

 

                     압화押花 / 김주완

 


나의 질식을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신문지의 검은 활자가 내 코를 짓뭉개고

기름 짜듯 내 체액을 지긋이 뽑아갔다


롤러를 빠져나오는 국수 반죽처럼 몸이 평면으로 압축되면서

살아온 날들의 부피가 허공으로 빠져나갔다

사지 멀쩡하던 굴곡진 몸체가 허망하게 무너지자

싱싱하고 찬란했던 숨결이 몇 개의 활자들을 데리고 서둘러 나를 떠나갔다


압, 화,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나는 창씨개명 되었고

그들의 무심한 완상에 맡겨졌다


그러나, 숨을 멈추면서부터 편해지긴 했어

나보다 더

일사불란하게 창씨개명한 종이꽃을 보았거던

사무실 의자마다 앉은 그들은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치며 전자결재를 하고 있었지


그래도,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죽은 채로 죽지도 못하고 무망하게 살았다

이제는 사라지고 싶어

누가 나를 갈부수어 가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흔적 없이 하얗게 망각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