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맨드라미 / 김주완 [2012.02.07.]

김주완 2012. 2. 7. 21:39


[시]


맨드라미 / 김주완


치켜세운 목을 조악거리며 수탉 한 마리 마당 가운데로 나서고 있다 붉은 볏을 세워 가볍게 흔들며 푸른 물이 나도록 허공을 톱니로 썰고 있다 오종종한 병아리들과 둔부가 통통한 암탉 두어 마리, 부챗살처럼 벌어져서 뒤따르고 있다 관은 높은 곳에서 권위를 거머쥐고 널리 떨치는 것, 수탉이 목을 젖히고 한껏 큰 소리로 길게 울었다 아래채의 초가지붕 마른 볏짚이 가볍게 흔들렸다


볕살 끓는 우물가 맨드라미 한 그루 실하게 서서 검붉은 계관鷄冠 일렁이고 있다 한가득 머금은 자잘한 씨앗 까맣게 공중으로 금세 흩뿌릴 것 같다 푸른 대숲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맨드라미 쪽으로 몸을 돌린다 지렁이처럼 대숲을 빠져나온 바람 한 줄기, 맨드라미 꽃술 부근을 서성인다


살갗 따가운 팔월 땡볕 아래 사랑이 익는다 씨 맺은 사랑은 벼슬이라도 한 양 머리에 관을 쓰고 우쭐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