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눈길 6 / 김주완 [2012.01.31.]

김주완 2012. 1. 31. 13:36

 

[2012.11.20. 『언령』 7집 발표]


 

 

[시]


눈길 6 / 김주완

                                                              ― 눈길을 가며 기다리는 폭설


첫새벽 하얀 눈길을 처음으로 가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벌판을 가로지르던 바람은 자작나무 숲에서 잠들었다 천지는 고요하고 적막하다 소나무 잔가지도 제 몸에 앉은 눈을 털지 못하는 저 고요, 절대 안온을 깨는 것은 불경이다 새들의 가지런한 발자국조차 아직 찍히지 않은 하얀 눈길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는 것은 정말 송구하다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증기기관차의 연기처럼 풀썩풀썩 날리는데 눈밭에서 숙성된 공기는 상쾌하다 그러나, 깨끗하지 못한 신발자국을 그대 몸에 남기는 나는 파렴치한이다 어떻게도 속죄할 수 없는 죄인이다 지나온 길에 다시 폭설이 내리기를 바란다 흔적을 지워주는 은혜로운 용서를 나는 바란다 덮으면서 지우는 폭설의 용서는 처음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첫 눈길을 열고 가면서 염원하는 은총의 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