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9월을 보내며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4. 10:44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9월을 보내며 / 김주완



망초꽃이 지고 달맞이꽃도 졌다.

그 여름이 자나자

몇 개의 무늬를 만들며 자욱한 소리들이 스러져 갔다.

그 해 9월의 그곳은

그러나 남아 있는 섬이다.

뿌리 없이 떠도는 적막한 표류,

무너짐과 흩어짐의 현장 사이로

빈 창 너머 언덕을 내다보면

바람은 늘 연이어 일고

뜯기고 찢기고 밟히며

더러 부서진 몸의 일부를 날리며

마른 꽃대가 거기 있다.

자리 아닌 자리를 지키며

숨긴 채 우는 속의 울음,

무성한 적의 가운데

저물녘까지 우리는

무엇을 더 바라고 있는가.

들국화는 곧

초초하게 또 다른 얼굴을 열 것이다.

시간은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