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9월을 보내며 / 김주완
망초꽃이 지고 달맞이꽃도 졌다.
그 여름이 자나자
몇 개의 무늬를 만들며 자욱한 소리들이 스러져 갔다.
그 해 9월의 그곳은
그러나 남아 있는 섬이다.
뿌리 없이 떠도는 적막한 표류,
무너짐과 흩어짐의 현장 사이로
빈 창 너머 언덕을 내다보면
바람은 늘 연이어 일고
뜯기고 찢기고 밟히며
더러 부서진 몸의 일부를 날리며
마른 꽃대가 거기 있다.
자리 아닌 자리를 지키며
숨긴 채 우는 속의 울음,
무성한 적의 가운데
저물녘까지 우리는
무엇을 더 바라고 있는가.
들국화는 곧
초초하게 또 다른 얼굴을 열 것이다.
시간은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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