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저녁에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4. 10:52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저녁에 / 김주완



파란 그대의 사랑과

보오얀 내 사랑이 물방울로 만나

모양 바꾸며 흘러가듯

이슬인 듯 얼음인 듯 소나기인 듯

그렇게 오래 달라져 가듯,

죄다 내 것이 아닌

죄다 그대 것도 아닌

좁디좁은 우리의 터전에서

무얼 아는가.

볼 수 있는가,

물속에 묻혀 물의 파랑을 물의 숨결을

흐르는 물의 방향, 물의 빛깔을

꿈틀거리는 산맥의 운동과

희디흰 피

산과 바다를 누가 보는가,

저 도도한 정신의 물줄기가

시대의 강안을 침식하며 한 길

순리로 치닫는데 무얼

지혜의 부스럭지로 말하는가.

울음 짓는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말들과

벌써 누구 것도 아닌 생각이

그대 파아란 사랑과

보오얀 내 사랑이

눈물로 만나 눈물로 흐르듯

이슬인 듯 얼음인 듯 소나기인 듯

시대의 강물은 그리 흐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