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날벼락 / 김주완
1
이게 바로 해일이다,
피할 수도 없고
넘을 수도 없는
이 거대한 파도와
강철 같은 바람과
청취가능의 파장을 넘은
무색의 이 소음이
바로 해일이다.
이겨 낼 도리가 없다
견디어 낼 재간이 없다
그냥 쓰러질 밖에
그냥 짓밟힐 밖에
그냥 만신창이가 될 밖에
아무 다른 방법이 없다.
어쩔까,
어떡해야 할까,
그들의 율법
그들의 윤리로
못 박히는 내 육신
나의 정신,
올라야 할 골고다는
너무 가파르고
지금
나는 무력하다,
2
있으라 한다,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저 굳은 바위의 뿌리도
뽑혀 나는데
당당한 산허리도 무너져 앉는데
날더러
참으라 한다,
견디라 한다.
내가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죄 없는 풀꽃들을 밟으라 한다,
냉혈한 바람 앞에
던지라 한다,
내 윤리와
내 정신의 연한 속살은
따갑게
따갑게 전율하며
어쩌지 못하고 있다,
파열하고 있다.
무력한 정신은
등불처럼 거물거리고
꺼져 가고
지금 나는 허우적이며
투항의 백색 기旗를
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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