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의 문화칼럼-왜관의 세밑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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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왜, 어려웠던 일들만이 그리도 많이 기억에 남아 있을까? 신나고 즐거웠던 일들은 금방 잊히지만 힘들었던 일들은 보다 긴 유효기한을 가지는 것 같다. 한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어버리자고 망년(忘年)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질탕하게 술을 퍼 마시는 망년회라는 모임이 한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쯤이면 누구든 마음부터 쫓기게 된다. 주부들은 겨우살이 준비로 김장을 하느라 분주하고 직장인들은 업무를 마감하느라 야근까지 불사한다. 한해를 정리하거나 기념하는 송년모임이 여기저기서 열린다. 공적인 모임도 있고 사적인 모임도 있다. 가고 싶은 모임도 있고 피하고 싶은 모임도 있다. 정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어색하게 맞닥뜨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두가 세밑의 풍경이다. 며칠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 간다. 사람과 사물, 일들과 날짜에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 부여는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면서 삶 그 자체이다. 바꾸어 말하면 의미 없는 삶이란 없다. 삶이 흘러가듯이 의미도 흘러간다. 오래 가는 의미도 있고 소멸하고 망각되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무의미조차도 의미가 된다. 의미에 대한 의식은 자기 존재감의 실존적 확인이기 때문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소도시인 왜관읍의 세밑 풍경은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채 차분하고 아늑하다. 이런 저런 행사들이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도시엔 아직도 정오마다 사이렌이 분다. 부우∼ 길게 한번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정겹기 짝이 없다. 몇 번의 사이렌이 더 울리고 나면 이 해가 끝날 것이다. 왜관역 광장엔 성탄을 찬미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밤을 새워 어둠을 밝히고 있다. 청아한 성당의 종소리가 때마다 시가지를 감싸 안으면서 흐른다. 가로수에 내건 깨알전구가 별꽃처럼 고즈넉하게 명멸하고 있다. 지난봄의 벚꽃은 화사했고 여름엔 태풍 하나 찾아오지 않았다. 가을 단풍은 유난히 곱고 아름다웠다. 시 승격을 앞두고 있는 칠곡군, 12만 군민의 마음에는 세밑에도 훈기가 돈다. 2008년 한 해가 이제 며칠을 남겨두고 있다. 그 며칠이 지나고 나면 새해 새날이 온다. 지금쯤은 묵은 서랍을 정리하고 새 수첩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새해 새날이라고 해서 묵은 해 묵은 날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매듭지은 하나의 구분 점에 의하여 묵은해와 새해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매듭의 의의는 마음가짐에 있다. 지나온 한해를 어떻게든 정리하고 갈무리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것이 곧 희망찬 새해 새날을 맞이하는 마음의 준비이며 자세이다. | |||||||
칠곡신문기자 newsir@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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