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의 문화칼럼-귀거래사(歸去來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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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내게 준 것을 고향에게 돌려줄 차례"
“돌아가느니/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이제껏 정신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버렸지만/(중략)/길을 헤맨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중략)/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저녁 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중략)/어찌 마음을 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겠으며/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중략)/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중략)/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해야지/(중략)/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지으며/(중략)/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나는 2009년 2월 28일자로 명예퇴직을 하고 고향인 칠곡군 왜관으로 돌아간다. 일생을 정결하게 살다 간 은일시인 도연명에 어찌 나를 비할 수가 있을까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음만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으리라. 보장 받은 정년을 5년 6개월이나 남겨둔 채 훌훌 털고 강단을 떠나면서 지금까지 나 역시 길을 헤맸다는 생각이 든다. 살벌한 객지를 전전하면서 영혼은 상한 갈대가 되었다. 학문 외적 요소가 학문과 진리를 구축(拘縮)하는 학계와 강단에서 사지가 마비된 정신의 촛불은 가물가물 꺼져갔다. 삶이 무겁고 고단할 때마다 얼마나 간절하게 고향을 그리워하였던가. 숨 막히는 정글을 헤맬 때나 포식자를 피해 넘어지고 긁힐 때마다 매양 생각나던 어머니, 그렇다, 지친 영육을 이제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더 이상 욕심낼 것이 없다. 버릴 것은 버리고 빈 몸으로 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물론 궤도를 이탈한 행성은 영원히 우주의 미아가 되고 마는 법이지만 인간이라는 중심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떠나온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영겁회귀는 그러므로 행복한 순리이다. 고향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니다. 우쭐거리기 위해서 오는 곳도 아니다. 다만 묻혀들고 젖어들기 위해서 오는 곳이다.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풀어놓기 위하여 오는 곳이 바로 고향땅이다.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낙동강변 산책로를 여유롭게 걸을 것이다. 그나마 아직 쓰임이 있다면 고향에 나를 봉헌할 것이다. 길거리의 휴지 한 장을 주워도 고향땅에서 주울 것이다. 꽃을 가꾸듯 고향의 문화와 문학세계를 키워 나갈 것이다. 이미 상가(商街)가 되어버린 왜관리 211-15번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그곳 가까이에 머물면서 고향이 내게 준 것을 이제는 내가 고향에게 돌려줄 차례이다. 천명(天命)의 길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 |||||||
칠곡신문기자 newsir@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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