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근작시

[시] 장마 3 / 김주완 [2008.07.04.]

김주완 2008. 7. 4. 18:59


[시]


     장마 3 / 김주완


장마전선이 북상하던 날

바람, 구름, 비의 군단이 깃발도 드높이 진군해 왔다

불을 뿜는 화력이

벽력 소리를 내며 벼락불을 쏘아

산꼭대기의 키 높은 나무들부터

시커먼 고사목으로 만들었다


눅눅한 탐욕들이 곰팡이로 피어나는

양력 칠월 상순의 이천 팔 년

도시의 고층 빌딩숲에서 씻겨 나온

구정물들이 시커먼 도로로 쏟아지더니

‘나 돌아온다’, ‘나 돌아온다’ 소리 지르며

누런 황톳물이 되어 강으로 흘러간다


개발예정지의 낡은 임대 아파트 베란다에선

헤진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

무른 야생화 뿌리가 썩어 문드러지면서

질긴 궁핍이 퉁퉁 불어나고 있다

화물과 중장비와 금속 노조가

목 쉬어 잦아드는 소리로 파업을 하고 있다


가물가물한 촛불들이 광우병 공포에 펄럭이다가

물대포를 맞아 화르륵 타오르며

빗속의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시퍼런 대나무들이 강경모드로 전환되었다

마침내 성직자들이 나서고 있었다

풀들이 일어서는 것은 곧 자연의 뜻이라


악수 쏟아져

대비로 마당 쓸듯 세상을 훑어가는 지금

북녘 오츠크해 기단은 이미 출발하여

제주 남쪽 먼 해상으로 전선을 밀어내는 중인데

어둔 숲에는 색깔 진한 버섯들이 은밀히 돋아나고 있다

젖은 풀숲의 곡진한 삶이 여전히 피로하다

 

                                                     <2008.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