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빨래 3 / 김주완
아파트의 등기부 명칭은 집합건물이다. 사각 또는 직육면체의 집합, 벌집 같은 구멍들에서 저녁이면 빨래를 한다. 베란다마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덜덜덜 빨래판의 진동음이 층간소음의 분쟁선을 오르내린다. 하루가 아슬아슬하게 빨래질 되고 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다른 빨래질이 다시 시작된다, 불 꺼진 침실에서 흐느적이는 빨래들, 암컷의 가늘고 높은 진동음이 가쁘게 새어 나온다. 수컷의 뜨거운 숨결도 아지랑이처럼 문득 번져 나온다. 생명의 불길이 포르르 타오르며 빨래질 되고 있는 것이다.
구멍마다 벌집들이 울렁거린다. 어지럽다. 어둠 속에서 살아나는 사람들, 밤에 비로소 순하고 맑게 싱싱해진다.
<200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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