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근작시

[시] 꿈땜 1 / 김주완 [2011.11.19.]

김주완 2010. 11. 19. 17:53

 

[시]


꿈땜 1 / 김주완


거인인 포리페모스는 바다의 신인 갈라티아를 짝사랑했다. 어느 날 포리페모스가 꿈을 꾸었다. 목동 아키스의 품에 갈라티아가 안겨 있었다. 둘은 맨몸을 부비며 물고기처럼 흐느적이고 있었다. 질투의 불길이 인 포리페모스는 그 날 아키스를 죽였다. 슬픔에 빠진 갈라티아는 사랑하는 아키스의 피를 강물로 바꾸었다. 마침내 아름다운 아키스의 얼굴 모습이 강물에 떠올랐다. 반짝이는 이를 드러내고 하얗게 웃고 있었다. 아키스의 얼굴을 향해 갈라티아는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갈라티아의 어깨에서 갈대가 돋아났다. ― 그 후 사람들은 갈대의 꽃말을 ‘깊은 애정’으로 불러 주었다.


지난 봄날 어느 밤에 나는 갯벌 갈대밭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높은 줄기 사이로 난 구불구불 진흙길이었다. 바람기도 없는데 갈대숲은  온통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갈대를 따라 갈대가 된 내 몸도 흔들리고 있었다. 구토와 현기증이 몰려왔다. 무서웠다. ‘가져 와라, 가져 와라, 다 가져 와라’ 갈대숲은 들릴 듯 말듯 어렴풋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까마득한 줄기 끝에서 갑자기 갈꽃이 피어 눈처럼 하얗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끝없이 가고 있었다. 허망했다. ― 며칠 안에 나는 이 년을 준비한 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그리고는 판을 흔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나의 행위를 ‘시원한 보복’으로 불러 주었다.

 

                                                                                                               <201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