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日散筆 6]
<대구일보 1990.06.06. 6쪽.>
힘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세상을 내다보면 보이는 건 온통 힘뿐이다. 나뭇잎이 돋는 것도 힘이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도 힘이다. 경제력, 군사력, 공권력, 정치력도 힘이다.
자동차가 굴러가는 것도 힘이고 그것이 굴러 가도록 운전하는 것도 힘이다. 병든 몸을 낫게 하는 약도 의술도 힘이고 충동력, 자제력, 감화력, 분별력도 힘이다. 생명과 무생명이 모두 힘으로써 유지되고 존속한다. 해와 달과 지구 등 모든 천체의 운행 또한 힘이며, 힘의 모습이다. 이런 것을 아는 지식 또한 힘이다. 우주는 힘으로 충만하여 있고 질서 지워져 있다.
이러한 모든 힘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으로 구분된다. 인간의 힘에도 다시 자연적 힘이 있고 인위적 힘이 있다. 소화력이나 충동력이 전자라면 파괴력이나 자제력은 후자이다. 자연적 힘이 조화라면 인위적 힘은 부조화이고 반자연적이다. 이리하여 인간의 인위적인 힘은 선과 악이라는 두 계기로 갈라진다.
신사고(新思考)를 강조한 초대형의 모(某) 정치인이 며칠 전 「힘의 사용」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자기네 정당의 연수회 석상에서 “한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도 참지만 이제 힘을 써야할 때가 왔다”고 역설하였다 한다. 그가 쓰겠다는 힘은 어떤 힘이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는 지금 힘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것도 갈등하는 힘이고 충돌하는 힘이며 부서지는 힘이다. 충돌하고 부서질 때는 오래 소리가 난다. 그러한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은 우르르 집중되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또 다른 소리를 향해 관심은 옮겨지고 지나간 것들은 망각의 강바닥으로 가라앉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씨는 남아 도사린다. 해직 교사, 해직 기자, 해고 근로자들이 그러하다. 모든 미해결의 문제들이 또한 그러하다.
인위적 힘의 강제적 행사는 언제나 강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의 방향을 취한다. 그러한 곳에는 자유가 제약되고 긴장과 경직이 계속된다. 저항의 불씨가 은둔하여 자란다. 힘의 이상적 행사는 밀어붙이는 다스림이 아니라 양보와 조화에 있다. 약자의 양보는 굴종이지만 강자의 양보는 여유이고 미덕이다. 그것은 인위적 힘의 선한 행사라는 도덕성의 확보 지반이다. 알맞게 균형 잡힌 힘만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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