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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산필 7] 옷 [대구일보 : 1990.06.13.] / 김주완

김주완 2001. 1. 17. 12:47


[大日散筆 7]


<대구일보 1990.06.13. 6쪽.>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머리 위에서 태양이 타고 있다. 6월이다. 성하로 가는 길목에서 세상이 뒤바뀌고 있다. 나무는 빈 몸에 두껍게 옷을 껴입고 사람들의 옷은 자꾸 짧아지고 보다 얇아진다. 거리에 나가보면 어지럽다. 황홀한 색깔의 범람이 세차게 물결치고 있다. 최소한으로 절약된 천, 그러나 갖가지 소재로 선을 살리고 죽이며 필요한 부분을 감싼 저 자유분방한 원색의 도전! 실로 그것은 자유일까? 개성, 혹은 기만일까?


고온다습한 분지의 여름에 사람들은 감춘 몸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의 일부까지 선정적인 모양새로 내보이고 있다. 그것은 잘 위장된 유혹이며 기만이다. 아니, 오랜 갇힘에 대한 반동 같은 것이다. 옷 속으로 들어가 유폐된 신체의 항거가 드디어 굳은 껍질을 깨고 떨쳐 일어서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옷의 구속성에서 마침내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원시회귀의 본성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벗어날 수 있는가? 맨살을 내놓아도 좋은 자유의 한계는 얼마만큼인가?


아무도 완전히는 벗지 못한다. 열려진 장소에서 닫힌 요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미 입는 것으로서 만들어진 옷일 뿐이다. 그러므로 옷의 존재론적 성격은 입는 것이지 벗는 것이 아니다. 모든 만들어진 것은 그 만들어진 성격의 구속과 지배를 궁극적으로는 면하지 못한다. 옷은 ‘지음’이고 ‘입음’이며 그러므로 ‘형성’이다. ‘고착’으로서의 형성은 ‘표현’이나 ‘이해’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지배’ 아래에서이다.


저 가공할 유행의 지배, 유행의 흐름에 순종할 때 우리는 편하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 속의 매몰이며 피지배자로서의 편안함이다. 패션의 유행이란 입성에 대한 개인적 기호의 사회화이다. 그것은 특정한 어떤 시대에 나타나는, 생명이 짧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육체만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옷을 입는다. ‘가치관’ 혹은 ‘의식구조’라고 불리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의 옷도 그것이 이미 만들어진 것인 이상 우리의 자유를 구속한다. 누구나 그것을 만들어 입고 그 속에 갇힌다. 묵고 굳은 의식의 옷을 벗어나 순수로 귀향하는 날을 생각해 본다.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