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日散筆 5]
<대구일보 1990.05.30. 6쪽.>
장미, 그 주홍빛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연구실 창가엔 지금 장미 한 송이가 피고 있다. 가늘고 긴 유리잔 속의 투명한 물에 허리를 담든 채 고운 꽃잎을 조금씩 피우고 있다.
오후 한나절, 빛살이 들면 연한 주홍빛 꽃잎은 살 속으로 피가 돈다. 역광의 빛살이 투영된 꽃잎의 겉살과 속살은 제각기 포송포송한 입체로 살아나 은유의 말을 토한다. 우주가 있고 그 근원적 조화로서의 중심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수요일의 이른 아침, 신입생 순이가 들고 온 꽃이다. 간혹 연구실을 찾는 학생들이 있고 더러 그들의 손엔 꽃이 들려있다. 카네이션, 장미, 안개꽃, 후리지아, 국화 등 꽃의 종류는 갖가지이고 한 송이일 때도 있고 다발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선연한 빛깔의 장미는 처음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흑장미, 백장미, 적장미는 이전에도 이미 보아 왔지만 이렇게 탐스럽고 산뜻한 주홍빛은 처음이다.
꽃에 자주 눈이 간다. 주홍 - 그것은 강하거나 진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히 다가와 영혼을 찢는 설렘의 빛깔이다. 잠든 의식을 두드려 갑자기 당황하게 하고 깊이 숨은 자성(自省)과 회의의 골짜기를 더듬게 하는 색깔이다.
유리잔의 굴절로 꺾인 허리는 애처롭다. 그 위로 힘차게 피워 올리는 꽃대는 외롭다. 그러나 피움(開花)은 언제나 절정과 정상을 향한 한바탕 숨 가쁜 달음박질의 몰아침이다. 굳어지지 않은 유연함이다. 가냘픈 지탱은 연약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의 표징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의 눈물겨움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 그들과 장미는 하나이다. 푸름 혹은 싱싱함을 저리도 열심히 키워가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모습은 굴절되어 비춰지고 처연한 주장은 외면된다.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지식을 파는 장사꾼으로 나는 전락하지 않았는가? 꽃처럼 오롯하게 피어오르는 그들의 젊음 앞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지식도 일종의 소유라면, 그것을 나누어준다는 조건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경직된 가치관을 요구하며 권위와 횡포를 자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꽃보다 아름다운 학생들이 가져오는 꽃 앞에서 고뇌는 그렇게 인다. 지난한 시대의 숨 막히는 삶의 늪을 꿋꿋하게 건널 힘을 나는 과연 그들에게 줄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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