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日散筆 8]
<대구일보 1990.06.20. 6쪽.>
생명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생명들이 죽고 있다. 풀도 나무도 미물도 짐승도 아닌 인간의 생명이 때도 없이 떨어지고 있다. 그것도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 죽음들이고, 사고사나 타살뿐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적 갈등이나 고뇌로 인한 자살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인한 희생이고, 항변으로서의 죽음들이다.
대학가와 노동현장, 그리고 거리에서 분신 혹은 투신하는 자살이 그것이고, 저 아비규환의 입시경쟁의 중압에 눌리다 못해 목숨을 끊는 입시생의 죽음이 그것이며, 가난의 극점에서 맞은 생일날 팥빵 한 개로 마지막 만찬을 나눈 12세, 14세 형제가 목을 맨 자살이 그것이다. 하나같이 이제 갓 봉오리가 맺히거나 피기 시작한 꽃다운 나이들이다.
지난 며칠 사이, 십대 여고생 두 명과 이십대 청년 한 명이 같은 장소인 영남대에서 투신한 바 있다. 한결같이 그들은 전교조를 지지하며, 또한 해직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스스로 몸을 던져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신문과 방송에선 구석자리 짤막한 기사로 언급되는 일과성 사건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우리 시대는 지옥의 시대이고 죽음의 시대이다. 입시지옥ㆍ교통지옥ㆍ취직지옥ㆍ민생지옥 등, 지옥의 천지 사이에는 죽음이 만연하고 그것은 어느새 무심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죽음 앞에 진실로 참회하고 고뇌하며 문제를 풀고자 한 자가 있는가? 있다면 그는 누구인가? 아직도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어두운 곳은 있었다.’, ‘자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안일한 변명과 주장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사회문제는 사회적 구조에서 야기되고 사회적 구조는 또 다른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구축되고 유지된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강대국과의 국교정상화나 프로야구나 월드컵축구, 천하장사 씨름대회의 연이은 개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밀한 학문적 분석과 고도한 해석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로지 뜨거운 피가 도는 때 묻지 않은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작은 실천, 실질적 개혁의지의 지속적 실행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생명은 삶의 바탕이고 사회의 토대이다. 바탕이 타락하고 무너지는 사회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 위에 계속 서있기만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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