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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산필 3] 허유 선생 [대구일보 : 1990.05.16.] / 김주완

김주완 2001. 1. 13. 12:34


[大日散筆 3]


<대구일보 1990.05.16. 6쪽.>


허유(虛有) 선생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허유(虛有)는 원로 철학자 하기락(河岐洛) 박사의 아호이다. 살아가는 모습과 호가 그렇게 하나일 수가 없다.


온토로기(Ontologie)를 전공한 분답게 그의 호는 ‘빈 있음’이란 뜻으로서 너무도 존재론적이다. 평범한 사고로 보았을 때 비어있음(虛)은 곧 없음(無)이다. 빈 그릇이란 그릇 속에 아무것도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릇은 있고(존재하고) 그릇 속의 빈 공간 역시 존재한다. 그러므로 조금만 깊이 사고한다면 허(虛)는 무(無)가 아니라 유(有)이다. 「비어 없음」이 아니라 「비어 있음」이란 말이 이를 입증하지 않는가.


여기서 인식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인식의 세계에는 무가 있어도 존재의 세계에는 무가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없음은 있음이 되고, 비움은 채움이 된다. 허(虛)와 유(有)가 하나가 되어 허유(虛有)로 되는 것이다. 허유는 흐르는 물이고 바람이고 우주이다. 무엇이건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의 무한한 존속이다.


허유 선생은 비운 채 「빈 있음」으로 사는 분이다. 대학 강단에서 평생을 보내며 배출한 제자가 부지기수이고, 학통을 이어받아 교수가 된 자만도 반백을 헤아린다. 그러나 아직 18평 국민주택에 기거하며 고등학생용 나무책상 하나에 의지하여 연구하고 집필한다. 스물여섯 권의 저서와 역서, 쉰 편이 넘는 논문, 각종 시사평론과 소고의 산실이 두 평도 안 되는 서재이다. 앎과 행함이, 이론과 실천이 말 그대로 하나이다. 춘추 일흔 여덟인 이제껏 노철학자의 수입은 생활비에도 밑돌지만, 그 궁핍한 돈을 쪼개어 노동신문을 만들고 사회운동의 선봉에 나선다. 광야의 외로운 소리는 공허하게 메아리치지만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정은 변함없이 뜨겁다. 누가 감히 선생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히 시대의 지성이요, 마지막 양심인 선생이지만 스승의 날이 있는 이 달에 그를 찾는 제자가 몇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선생을 주제로 한 졸시 한 편을 옮긴다. 「ㆍㆍㆍ/변형의 계절에 앉아/ㆍㆍㆍ/노안의 철학자는 힘이 들까/잠시 지나간 사람들의/부서진 숨결들이 되살아나는/토요일 오후 네 시/ㆍㆍㆍ/안개 숲속/앓는 공화국의 우울한 침묵이/비에 젖는다, 아득히/먼저 떠난 아나키스트/ㆍㆍㆍ/역사가 빨아낸 자유의 빛깔은/당신의 눈 속에 흐리고 흐리다/외계의 장맛비 칼질하는 저녁 때/」(‘겨울장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