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日散筆 4]
<대구일보 1990.05.23. 6쪽.>
누님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삭막하고 각박하다. 어제 오늘은 아니겠지만 갈수록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고 사람에 쫓긴다. 살기 위해 쫓기는 것이 아니라 쫓기기 위해 사는 것 같다. 한 치의 여유가 없이 팽팽한 삶이고 긴장이다. 도처에서 번득이는 적의가 곤두서고 있다. 무심하고 의례적인 얼굴들이 음험한 칼날을 감춘 채 창궐하는 것이다. 마음 풀어놓고 만날 친구가 없다. 있는 대로 열어 놓고 얘기해도 부끄럽지 않을, 아무 말이나 마음껏 해도 좋을 그런 친구들이 없다. 우리는 모두 굳고 단단한 껍질 속에 엎드린 채 달팽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몸을 움츠려 스스로의 성벽 속에 칩거한 채 거부와 반격의 완벽한 준비를 완료하고 촉수 끝에 공격의 순간을 예비하고 있다.
누님이 생각난다. 기대어 쉴 수 있던 유년의 푸른 기억 속에 머무는 누님의 하얀 영혼이 떠오른다.
마당가엔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깡통으로 울을 친 꽃밭에는 보랏빛 향기가 송이로 달리던 라일락도 있었다. 꽃인 듯 열매인 듯 작은 함성으로 자욱이 일어서는 포도나무 넝쿨 아래로 까맣게 닳은 살평상이 있었다.
소복하니 감꽃이 떨어지면 마당도 살평상도 꽃무늬가 되었다. 평상 가장자리에서 해가 이울도록 책을 읽던 다소곳한 누님은 내 유년의 풍경 속에서 가장 곱고 은은한 선(線)의 설렘이었고 충격이었다. 누님이 만들어준 감꽃 목걸이와 팔찌들을 빙빙 돌리며 달리던 골목길은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익숙한 나의 세계반경이었다. 싱싱한 환희가 약동하는 빛의 바다였다. 더러 주머니 속의 감꽃을 씹으면 들쩍지근한 단맛이 오래 후각 가까이 남아 있곤 했다. 모깃불 매캐한 연기가 뿌연 은하에 닿는 여름밤이면 평상 가에 앉은 누님의 도란도란한 이야기에 나는 어느새 더위를 잊고 잠이 들었다.
그 어느 때쯤부터 누님이 읽은 책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삼십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시인이 되었고, 누님은 가족이 많은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어 수성구에 살고 있다. 연륜의 집적과 시야의 확장에 따른 내 삶의 진행이 깊디깊은 정신의 몰락이라면, 누님은 구원의 메카(Mecca)이고 살아있는 순수의 화신이다.
답답하면 누님을 찾고 누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반긴다.
누님 -- 나의 성지순례의 그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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