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칼럼 · 카툰에세이/칼럼·사설

[대일산필 2] 꿈 [대구일보 : 1990.05.09.] / 김주완

김주완 2001. 1. 12. 12:30


[大日散筆 2]


<대구일보 1990.05.09. 6쪽.>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만나는 사람마다 답답하다고 한다. 속이 끓는다고 한다. 불안한 늦봄의 때 아닌 먹장구름이 사람들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다. 암담하기로 치면 메가톤급의 스트레스이고 절망지수(?)이다. 최근의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KBS사태, 노사분규, 물가폭등, 증권파동, 민생불안이 그것들이다. 이름이 큰 정치인, 종교인, 학자, 경제인 등 존경하는 우리의 지도급 인사들이 내리는 상황분석과 병인의 진단 및 처방은 분분한데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교훈대로 누군가 문제를 꼬이게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풀어야 마땅한데 그러한 자는 어디에도 없다. 구국의 결단으로 합당을 하고 이제 곧 나라가 잘 될 것이라 했는데 그들이 구하고자 했던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인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젊은 양심 박진형 시인은 며칠 전의 만남에서 한 입 가득 불을 뿜고 있었다. 도대체가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 KBS 농성자 중 왜 3백 33명밖에 안 잡아갔느냐는 거다. KBS, MBC, CBS 직원 다 묶어가고 언론사 문 닫고 공장문 대학문 모두 닫아걸고 마음 맞는 저네들끼리 해나가면 조용하게 만사형통 할 텐데 왜 그리 못하느냐는, 제법 그럴싸한 원망이었다. 그래서 스멀스멀 인심이 떠나가고 천심이 날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혼란을 간추려 끌고 갈 지도자, 간디 같은 지도자가 우리에겐 없다고 한탄했다. 먼 위인을 그는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니체의 원인애(遠人愛)에 닿아 있었다.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꿈은 희망이며 절망이다. 가능성의 기대로서의 그것은 희망이며 비현실성(실현불가능성)의 인식으로서의 그것은 절망이다. 꿈을 꾸는 동안은 삶의 의미가 지속되고 확대되지만 꿈을 깨게 되면 삶의 의미도 사라진다. 이것이 삶을 지탱해 주는 끈으로서의 꿈의 양면성이자 동일성이다.


우리 시대에도 꿈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우리가 기다리는 꿈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N. 하르트만에 의하면 「위인이란, 그 자신의 이념을 가지고 군중 앞에 나타나 그들이 하고자 하지도 않는 것으로 몰아가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현실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여 줄 줄을 아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