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日散筆 1]
<대구일보 1990.05.03. 6쪽.>
아픈 5월
김주완(시인/대구한의대 철학과 교수)
달력을 넘기면 가슴 저린 달이 있다.
싱그러운 신록이 미안하고, 찬란한 햇살이 부끄럽고, 살갗을 스치는 훈풍이 오히려 비릿하며, 더러 한숨같은 비가 추적이는 그러한 계절이 있다. 바로 오월이다. 이것 말고 오월에 가질 수 있는 우리의 것이 과연 또 무엇이 있는가.
무심할 수 없는 달로 굳어져 버린 오월의 이유는 무엇일까. 시끄러운 소리가 도처에 무성한 오월의 정체는 무엇일까. 굳이 세세히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안다. 만신창이의 이 나라 근ㆍ현대사의 골 깊은 상처 몇 개가 이 오월에 새겨져 있음을, 깊디깊은 통증으로 머물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오월은 아프다. 해산달을 맞는 산모가 해마다의 몸살을 되풀이하여 앓듯 우리의 오월은 아프다. 미완성의 사월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한 덧난 오월의 바람기는 뒤뚱거릴 수밖에 없다. 자욱한 혼돈의 농무 속에 역사의 지평은 방황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침묵하는 영산강의 아픔, 낙동강의 수치, 동해남부선 철로 변으로 일어서는 풀들의 물결, 「남쪽 바다 그 파란 물」들의 심심찮은 징후, 울창한 숲속의 작은 새소리로 우짖는 시대의 지성, 시대의 양심들의 가슴 절절한 목청 푸른 자유의 노래, 평등의 절규, 앓는 오월의 신열은 뜨겁다. 마른 현기증이 메스껍다.
어둔 밤에 떨어져 간 꽃잎들은 흔적 없고, 재갈 물린 말(言)들과 강인한 실천의 힘줄들은 변방의 동토로 유배되어 떠나가도, 캠퍼스의 젊은 함성들은 끈질기게 대를 잇는다. 그러나 보다 강력한 것은 소리를 잡아먹는 또 다른 언제나 현란한 소리들이다. 갖가지 악기가 동원된 신묘한 교향곡의 연주는 때마다 급선회를 하고, 벌판의 풀숲은 부서지며 사라져 간 이웃의 기억도 잊은 채 일제히 바람의 방향을 따르고만 있다. 향일성의 타성으로 숙명의 늪에 침몰하고 있다.
침몰한 자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그 속에 빠져들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행형은 진행형을 대상화할 수 없는 이치로서이다. 신도는 아니지만, 생전의 어머니가 지성으로 다니시던 절이라도 찾아 불을 켜야겠다. 등 하나 달고 와야겠다. 눈 뜨고 맞는 건강한 오월, 살맛나고 신나는 오월을 간절히 기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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