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자연시』동인지 제9집(1996.11.15) 발표
시의 건축학
-- 시의 건축학은 파괴와 탈출로부터 시작된다 --
김주완
<하염없이 바라다 보기>
하염없이 바라다 보아야 한다.
흩어진 관심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시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하여
쓰여지기를 기다리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필요할 때 써내는 프로가 되기 위하여
정신의 중심으로 시선을 모아야 한다.
<부수기와 떠나기>
불같은 시선이 울타리를 깨고 견고한 벽을 무너뜨려
자유의 날개를 편 영혼이
시간 안에서 시간을 넘어서면
눈물이 돌 것이다.
마른 감성의 혈관으로 피가 돌 것이다.
뜨거운 피,
피의 바다가 형성되면
거기
깊이깊이 영혼의 맨몸을 담궈야 한다.
<에스키스>
얼음 같은 정신의 결정이 녹고
관심의 모니터를 메웠던 숫자들이 다운되면
스스로 일어난 감성이 한참을 서성일 것이다.
그때,
하염없이 걷게 하여야 한다.
철골에 콘크리트를 친
철벽같은 <존재의 집>*으로부터
알몸으로 탈출한 사고로 하여금
끝도 없이 외로이 걸어가게 하여야 한다.
마음껏 마음껏 보행하도록 버려두어야 한다.
걷다보면 저절로
먼 화면에 어렴풋한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거푸집에 언어의 용액 붓기 / 굳히기 / 받아내기>
굳이 무엇을 만들려 하지 말고
투명한 배경에 선명한 전경이 떠오르기를
그냥 기다리기만 하여야 한다.
그러면
송진이 흘러 광솔로 뭉쳐지듯이
새로운 세계가 새로운 범주로 정렬되면서
이미지의 거푸집으로 세워질 것이다.
이제, 물에 푼 석고 같은 언어의 용액을
거기에다 고르게 부으면 된다.
알맞은 때,
아기를 받듯이 온전히 받아내면 된다.
<다듬기>
물론 그 다음에 할 일,
씻기고 다둑이고 입히는 일은
즐거운 정신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서둘 일이 아니다.
성장이란 언제나
외출이 임박했을 때 하는 일이다.
<되돌아와 바라 보기 / 떠나 보내기>
처음부터 여기까지 명심할 일이 있다.
욕심내면 스러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제,
긴장을 풀어야 하는 긴장에서 놓여날 시간이다.
그리고는 처음에 떠났던 그곳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새로운 언어가 여는 새로운 세계의 형상을
일정한 거리 밖에서
또다시 하염없이 바라다 보아야 한다.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스스로 낳았으면서도 낯선 세계를
멀리 멀리 보내며 까맣게 잊어야 한다.
미련을 떨치고, 불안도 염려도 버리며
그로 하여금 그의 길을 가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은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그의 길이기에
그러하다.
* 마틴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규정하였다.
<199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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