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근작시

[시] 꽃에 대한 논쟁 / 김주완 [1996.04.22.]

김주완 2001. 4. 22. 15:15

[시]


     『시와 산문』1996-11월호 발표



       꽃에 대한 논쟁

    

                                               김주완


들국화 꽃을 따겠다고 했을 때

논쟁은 시작되었다.

재래의 야생종,

나는 희고 옅은 향기를 떠올렸고

그녀는 노랗고 진한 향기라고 말했다.

‘바로 이거야’라고 가리켜 보이기 위해

산길 양편을 경주하듯 열심히

우리는 살펴 내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야산 백운동 골짜기

하얀 들국화는 없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가 떠올린 것은 구절초 꽃이었던 것 같다.)

옹기종기 작고 노랗게 무더기로 핀 들국화,

승리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 같은 엉거시과에 딸렸지만 서로 다른 풀꽃 --

그러나 엉뚱하게도

자료의 잘못된 출력이 진행된 원천을 찾는

혼란한 길목에서

단순하고 분명한 이념으로 무장한 채

견고한 갑옷을 미안해하며

전리품을 주머니 가득 채워 간

어렴풋한 그녀의 미소는 지금

노랗고 짙은 베겟속으로 숨어

꿈의 바다를 건느는

선이 여린 나비로 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길로, 승리자는 떠나고

나만 혼자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지난 가을의 품

그래서 슬프다.


                  <199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