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자연시』동인지 제9집(1996.11.15) 발표
나는 늘 선에 홀렸다
-- 김관식의 사진작품 「4328년 겨울」
김주완
나는 늘 선에 홀렸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살아 흐르는 선의 율동에 혼이 빠지도록 끌려 다녔다. 어쩌면 나는 정직했던 것 같다. 움직이는 것에 따라 움직이고 흐르는 것에 따라 흐르며, 다른 것엔 눈 돌릴 겨를이 없었던 나의 관심은 애당초 자유가 박탈된 채 오로지 선에 속박되어 있었다. 하나의 방향으로 시각이 고정된 나의 눈뜸은 결국 밖으로는 눈멀어 있음이었으며 따라서 나는 늘 행복했다.
빛은 한쪽에서만 몰려오는 것이 아니었고, 이중 또는 그 이상의 광원이 쏘아대는 빛살과 빛살이 부딪쳐 선의 꿈틀거림을 더욱 역동적이게 하고 마침내 음영이 선명한 굴곡을 살려내고 있음을 간파하게 된, 이쪽 구릉의 능선을 타고 오른 지금의 나는 앞에 펼쳐진 더욱 장대한 능선과 구릉 앞에서 저 엄청난 땅의 살들과 그 살들의 살아있는 힘의 움직임을 보면서 짐짓 뒷짐을 지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범주적 욕구 --.
세계이며 우주인 어머니, 해동검 한 자루 숨긴 나는 그대 속으로부터 와서 아직도 그대 속에서 머물며 시간을 베며 가는 헤메임의 전율을 꿈꾸고 있다.
■ 시작 노트
선(線)은 거기서 우리를 부르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선의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 선의 현존재는 비존재이다. 그러나 비존재의 존재성에서 선의 순수성은 확보된다. 시공 내에서 우리는 선의 실현을 찾아내지만 선 그 자체는 시공을 넘어서 있다. 여기에 선의 유인성과 구속성이 있다.
선과 맞닥뜨림은 빛 속으로 오고, 긴장성과 개방성으로서의 선의 존재 성격이 그 때 드러난다. 팽배한 선의 힘이 꿈틀거리는 땅, 땅의 힘으로 살아나는 이념적 살들의 폭발 징후, 부정과 외면의 자기 실행은 그 때에 있어서 우리의 유일한 도피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하다.
검의 제자리가 검집이듯이 시인의 고향은 대지로서의 어머니이며 시인은 거기서 꿈꾼다.
<199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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