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有河岐洛博士學德碑
[전면]
한 손에 실존적 자유의 깃발을,
다른 손에 인간적 해방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일생을 통한 뜨거운 열정으로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어울러
이 나라 현대철학의 제1세대 학자로서
최고봉을 이루셨던 분,
이 곳 안의 출신의
허유 하기락 선생이시다.
2002년 6월 8일
虛有河岐洛博士學德碑建立委員會 세움
金柱完 글 짓고 蔡洙翰 碑銘 쓰다.
[후면]
허유 하기락虛有 河岐洛(1912~1997)
선생은 경술국치 2년 후인 1912년 1월 26일 경상남도의 고읍古邑 이 곳 안의에서 나라 잃은 백성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소싯적부터 명민하고 기개가 장한 선생은 1929년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졸업반에서 퇴학당한 후 경성중앙고보에 편입학하여 1933년에 가까스로 졸업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동경상지대학 예과를 수료한 뒤 와세다대학 문학부 재학중인 1939년 12월 항일학생운동으로 일경에 검속되어 옥고를 치루셨다. 1940년 와세다대학 졸업 시에는 하이데거를 전공하였다가 뒤에 N. 하르트만으로 연구방향을 바꾸셨다. 1945년 민족의 염원이었던 조국 해방을 맞아 한국농민조합을 창설하고 조합장에 피선되어 한국농민운동의 효시가 되셨으며 1946년 부산자유민보를 창간 주필에 취임하고 같은 해 4월 20일에서 23일까지 이 곳 안의에서 전국아나키스트대회를 개최하여 권력의 지방분산과 자주적 자유연합을 크게 주창하셨다. 일제에 의해 말살된 민족주체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학의 공고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하신 선생은 1947년 대구대학(현재의 영남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취임하여 학자로서의 일생을 출발하셨으며 이후 경북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동아대학교 초빙교수 계명대학교 대우교수 등을 1980년대까지 역임하셨고 그 사이 1951년에는 중등교육의 확대를 위하여 안의고등학교를 설립하셨다. 1961년에는 대구시 대학교육회 회장을 역임하신 바 있으며 1963년에는 한강 이남에서 최초의 철학전문 학술단체인 한국칸트학회(현재의 사단법인 대한철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철학자들의 항구적인 연구활동무대를 마련 하셨다. 퇴직 후에도 평생에 걸쳐 철학연구에 매진하신 선생은 25권의 저서와 19권의 번역서 29편의 논문을 남김으로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업적을 기록하셨으며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한 철학자와 교수 교원들이 부지기수이다. 만년인 1987년 경북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고문과 전국아나키스트 대회장을 역임하시고 1988년 세계아나키스트대회를 서울에 유치하여「세계평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시며 1989년 샌프란시스코 아나키스트대회 기조연설을 하시는가 하면 1990년 구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공식초청 방소 강연을 하시는 등 유년기부터 키워온 자유와 해방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셨다. 1990년 이후에는 한편으로 후학양성과 저술활동에 주력하여 대작『조선철학사』를 상재하시고 다른 편으로 국제평화협회 이사장을 맡아 기관지 [평협]의 편집인으로서 노동신문을 발행하여 근로자 대중에게 배포하셨다. 그러나 선생은 1997년 2월 3일 기관지 [평협]의 배포를 위해 집을 나서시다 마당에 쓰러져 이승을 떠나시니 향년이 86세이었으며 그 장례는 대한철학회장으로 봉행하여 지리산을 건너다보는 곳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늘밭에 안장하였다. 실로 선생은 세우신 학문과 닦으신 실천이 높고 맑아 고결하셨으며 곤궁한 자 허약한 자의 편에서 매사를 생각하셨고 산과 자연을 좋아하시어 순정純正 순일純一 순전純全한 기품으로 청빈한 한 생을 사시면서 한국현대철학의 기반을 굳건히 다지셨으며 실존적 자유와 인간적 해방의 실현을 위한 구도의 길을 걸으셨으니 그 뜨거운 학구정신과 강인한 실천의지를 추모하는 후학과 후진들이 이 유서 깊은 땅 안의공원에 돌 하나를 세워서 그 빛나는 삶을 길이 전하는 바이다.
건립위원회
고 문 ; 구 상 김춘수 이명현
자문위원 ; 김수찬 김종석 민동근 소흥렬 우인명 이종후 이홍주 채수인 한단석 한전숙 황대현
지도위원 ; 곽병숙 김길락 김병준 김수철 김우태 박선목 박원호 백승균 서배식 손원학
신귀현 신오현 안진오 안형관 유병덕 윤사순 이강조 이완재 이초식 조성술
조희영
위원장 ; 채수한
부위원장 ; 남서순 정태영
감 사 ; 이광률 임수무
기획위원 ; 김득만 김복기 김상은 김태양 문정복 박정옥 유명종 조욱연 최승호 허재윤
위원 ; 강동수 강신석 공정표 곽준식 권영락 권용원 길병휘 김경철 김기용 김병식 김봉균 김영기 김영수 김용일 김윤동 김윤정 김종두 김춘태 김태호 김형식 김호준 김희준 류의근 박영배 박완규 박인성 박주흠 박호석 방 인 배석원 배우순 배한우 서성수 서숭덕 서정욱 성교진 성낙원 손승길 송인창 송하경 시옥진 양방주 오병무 우정선 이근영 이대희 이범홍 이상봉 이선행 이우백 이윤아 이재권 이종채 이준영 이채주 이현철 이형환 이홍철 임채호 장현호 전경갑 전재원 정병석 정용길 정태환 조금제 조성용 조태훈 최신한 하재문 한자경 현덕형
간사 ; 김주완 이남원 문성학 이윤복 김용섭 문장수 장윤수 유철 배상식
유 족
자 ; 영석 영재 영운 영선 영욱 영우 영목 담
손 ; 9명
증손 ; 2명
** 이 학덕비는 2002.06.08.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안의공원에 제막되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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