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스승, 참 철학자 허유 선생님
허유 선생님 가신지 여섯 해, 이제야 당신을 기리는 학덕비를 세운다.
당초 예정했던 대구시 두류공원에 비석을 모시는 일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지만, 우리는 이를 불행하다 하지 않는다. 번잡함보다는 한적함이,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선생님의 삶이셨기 때문이다.
학문적 업적과 사회적 실천이 어느 누구보다 탁월하였건만 그 흔한 학술원 회원 한번 안 하시고 일생을 끝내신 분이 아니신가! 타고난 반골이며 영원한 자유주의자였던 분이 바로 허유 선생이시다.
<실존적 자유>와 <인간적 해방>이 당신 자신의 철학적 두 기둥이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은 한마디로 고결하셨다. 고결하셨기에 불의와의 타협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방법뿐만 아니라 수단도 선택하셨다. 철학자이자 아나키스트로서 자유의 추구와 실현을 위한 구도의 길을 걸으며 열심히, 뜨겁게, 순수하게 사셨던 분이시다. 그러기에 선생님의 삶은 개결하셨으며 학문은 명료하였고 실천은 사심이 없으셨다.
나는 허유 문하의 말 제자로 거둠을 받아 선생님의 만년 15년간을 가까이 모시고 공부하였다. 지금은 선생님이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던 대한철학회 33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과연 나는 얼마만큼 선생님을 이어가고 있는가? 학문적 역량은 재주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보여주신 정확성과 엄밀성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으며 정의에의 용기와 불의와의 싸움을 얼마만큼 해나가고 있는가? 당신은 가시고 당신을 기리는 돌 하나만 남았다. 준열하게 철학하는 정신이 살아 남아야 하는데, 깨어 있으므로 철저하게 실천하는 철학적 삶을 나는 아직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주완(대한철학회장/경산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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