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10.월. 영남일보 기고]
요산요수의 은사 허유 선생님
김주완(33대 대한철학회장/경산대 대학원장)
허유 선생은 산을 좋아하셨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산행을 했다. 주로 팔공산과 기백산, 지리산 등을 다니셨다. 특히 지리산을 유별나게 좋아하여 안 밟아본 등산로가 거의 없다. 80 노구에도 언제나 젊은 사람들을 앞질러 산을 오르셨다. 1988년 8월 지리산 주능선 종주 산행을 할 때는 필자의 오른쪽 무릎 인대가 늘어나 제자인 필자가 은사이신 선생의 부축을 받으며 산을 내려온 적도 있다.
선생은 자주 없어진 산길을 찾아 길을 내면서 오르내렸다. 올라간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산에서 길을 잃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계곡을 만나면 간혹 등목을 하였고 인적이 아예 없는 곳에서는 목욕을 하였다. 허유 선생은 깡마른 체구에 군살이 없었고 고령임에도 근육이 처지지 않고 탄력이 있었으며 피부가 희고 윤택하였다. 산행이 끝나면 맥주 한 두병으로 거나해지셨고 그럴 때쯤이면 으레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정치철학과 도덕철학 강론을 하셨다.
곡우 무렵이면 고리수 물을 마시러 용추계곡을 찾았고 방학이면 현직 교수인 제자들을 거느리고 산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 기백산 중턱에 있는 옛 화전민 촌인 묵밭의 산딸기 밭에서 한나절이 되도록 딸기를 따먹은 적도 있다. 가시에 긁혀 손이 아렸지만 선생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복분자(覆盆子)의 효능을 설파하셨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하여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한다. 인간사랑이라는 선생의 뜻은 굳고 중후하였다. 선생의 삶은 개결하였으며 학문은 명료하였고 실천은 사심이 없으셨다. 요산요수는 선생을 위한 말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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