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대신문』, 제194․195호, 1997. 3.11. 火. 권두시>
이 봄에는
김 주 완(시인, 경산대 교수)
봄은
때가 되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닫힌 가슴을 열고 맞이하는 자에게 만
그것은 온다.
저 무겁고 어두운 겨울의 각질 속에 갇혀있는 한
봄은 아직 먼 꿈으로만 간절하게 있고
도약과 비상의 새싹은 틀 수가 없다.
이미 지나가 버린 승부는
먼지를 털 듯 훌훌 허공으로 날려보내자.
어제에 묶여있는 자에겐
출발의 설레임과 숨가쁜 환희가 없다.
우리를 끝없이 위축시키던
열등과 절망과 참담한 패배의 기억은
역사의 유물로 순장시키고
이 봄에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빈 몸
빈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나아가
온 몸으로, 눈부신 여름을 예비하고
가득한 가을을 준비하자.
봄비 잔잔히 내리는 오후에는
「짧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쓰로 꼿꼿한 자존심을 세우며
포켓볼이라도 치자.
꽃샘바람 매운 저녁이 오거든
미니 스커트에 롱 부츠를 신고
마음이 하나되는 사람들과 만나
H.O.T.의 「캔디」라도 들으며
주머니 가득 푸른 여유를 담아보자.
진리와 자유와 정의,
누가 와서 건네주는 추상과 이념이 아니라
발송지도 모른 채
택배로 배달된 낯선 남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가장 현실적인
본래 우리 것이었던 그것들 위에서
이 봄에는
잃어버린 혼을 찾고 생명을 찾아
지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정결한
사랑과 우정의 깃발 하나 내걸어
봄 하늘 아련한 살 속 깊이
펄펄펄 한참을 날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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