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기념시(기념시·인물시·축시·조시 등)

[신년시] 2000년 아침에 / 김주완 [2000.01.01.]

김주완 2001. 3. 3. 18:04

 

     2000년 아침에 / 김주완


오늘 아침,

천년을 건너 온

저 붉디붉은 해를 보며

우리는 생각합니다.


지나온 날마다 만난

우람한 벽들을 넘으며

우리가 한 생각과 말이 하나이지 않고

우리가 한 말과 행위가 하나이지 않으며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용서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모두는 각자의 어제를 책임져야 합니다.


새 날이 새 날일 수 있고

새 시대가 새 시대일 수 있음은

숫자로서의 연대 변경이 아니라,

오로지 묵은 때를 씻고 나서는

새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임을,

새 마음이

어제의 책임이라는 신발을 신고

가장 경쾌하고, 가장 육중한 발걸음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것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헐벗은 자, 굶주린 자,

소외된 자에게

지난 시대에 미진했던 배려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제

그 동안 누린 자가

스스로 내어놓는 양보와 증여를,

내가 선 이 자리가 아니라

이웃이 선 그 자리에서

이웃을 생각하며 이웃의

허물을 감싸 안는 눈꽃 같은 베풂을,

때마다 은혜만 입고

오래 소홀하고 무심했던 모든 분들에게

다함없는 공경과 성심으로 바치는

헌신을

우리는 모두

한 가슴 가득 가지고 싶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풍요한 것이

바로

일마다 의미의 옷을 입히는 일입니다.

자기만의 가장 맑고 고운 색깔로

날마다 의미가 충만 하는

2000년대,

모래알 같은

의미의 꽃씨가 색색의 꽃잎으로 벙글어

온 하늘을 가득 메우는

새 날, 새 시대가 되기를


오늘 아침

저 붉디붉은 해를 보며

손 모아 우리는 소망합니다.


                        2000. 1. 1.

                 새 시대, 첫해, 첫날, 첫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