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 서울:시와 산문사, 1995-겨울(8), 269~278쪽.
나의 체험적 시론 : 시와 철학, 두 극지를 오가는 순례 김 주 완 시를 알기 위하여 철학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시인 지망생이었을 때나 시인이 되고 난 후나 한결같이 나를 애태우게 했던 소망 -- ‘시란 무엇인가’라는 의문 --을 풀기 위한 하나의 기투(企投)였다.
그러나 시의 본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내 속에 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 속에 내가 있는 것도 아닌, 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극지(철학)에 나는 삭막하게 서 있었으며, 그러한 나를 참으로 안타깝게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1. 1980년대 초 잠시 사진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사진 전문 월간지에서 연재 교섭이 들어왔다. 이왕이면 사진에다가 독자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도 곁들이면 좋겠다는 편집자의 주문에 따라 만 2년 이상 사진과 글을 나란히 내 보냈다. 글은 ‘시 비슷한 것들’로 썼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가졌던 시인에의 꿈, 같이 움직이던 사람들은 화려한 등단을 하고 그 지명도가 날로 높아갈 때 나는 초라한 낙오자가 되어 마침내 버리고 만 그 미완의 꿈에 대한 미련이 ‘시 비슷한 글들’을 쓰게 했던 것같다. 사진도 그 속에 시경(詩景)을 넣은 시적 사진을 만들고자 하였다.
처음 일 년 가까이는 구름을 주제로 한 시와 사진을 실었다. 그 때 내게 구름은 떠서 머무는 소망이었으며, 흐르면서 사라지는 꿈이었으며, 내리면서 눈물이 되는 허무였다. 물의 삶의 역사인 그것은 곧 내 삶의 모습이었다. 시를 쓰듯 사진을 만들고, 사진을 찍듯이 시를 썼던 나는 그것들의 깊숙한 속에 나도 모르게 대학 전공이었던 철학적 사색을 깔아 가고 있었다.
우연하게도 연재로 나가던 시와 사진이 구상 선생님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러한 인연으로 그 중의 한 편인 「구름꽃·2」가 <현대시학>지의 초회 추천작이 되었다. 마침내 눈과 귀가 트인다. 하늘 아래 넓은 세상의 그저 한 줌 물이던 실체. 목마른 아우성으로 광란하는 群生의 들풀 속을 연기로 승천하며 시간을 여미는 고요한 몸짓. 어디까지 올라야 하는지 언제쯤 그쳐야 하는지, 하고 싶은 무엇이 있으며 또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천리 밖에서 꿈결로 들려오는 未明의 노래 소리. 아직은 이름할 수 없는 새로운 모든 것 속에서 기이한 모든 것 곁에서 한 점 바람에도 음률처럼 흔들리는 늘 빈 몸으로 때론 온 하늘을 덮어 태초의 어둠을 깔고 싶은 때가 있다. 멀리서는 뚜렷하던 윤곽도 다가서면 스러지고 형체가 없이 몸짓만 남은 마음,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쯤 그냥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디쯤인지도 모를 오늘을 꾸리며 어느 산마루 너머로 연한 속살을 피워 올리고 작지만 은총 같은 그늘을 만들어 좀은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 졸시「구름꽃·2」전문 구상 선생님은 추천사에서 ‘깊은 인식의 주제에다 영상적 기법을 살려 쓴 시’라는 간단한 언급과 함께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고 하셨다(그러나 나는 추천작에 통 자신이 없었고, 얼마 뒤 첫 시집을 낼 때는 그것을 위와 같이 개작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별로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 구상 선생님이 가졌던 그때의 기대가 지금쯤은 실망으로 변했을 것이라는 염려가 나의 자책이 되고 있다).
뒤이어 나에게 부과된 숙제였던 신작시 40편을 써낸 다음 추천이 완료되었다. 1984년 11월이다. ‘시 비슷한 글’이 ‘시’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용이 아닌 형식에 불과하였다. 2. 1987년 벽두에 향년 72세를 일기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겠지만 내 어머니 역시 헌신과 희생과 인고의 화신이었다. 어머니는 6대 독자였던 아버지에게 시집와,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열두 자식을 출산하여 그 중 반은 잃고, 온갖 정성으로 나머지 반을 건져 쓰러져가는 가문을 일으켰다. 찌든 가난 속에서도 스스로의 살을 깎다시피 하여 자식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출가시켰다. 이제 자식들이 밥이라도 먹을 만하게 되어,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게 되었을 때 평생에 호사 한 번 못 해보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추상적 죽음이 아닌 실존적 죽음 앞에서 절실히 경험해야 했던 무망함과 무력함. 내가 어머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내게 남겨진 것은 회한뿐이었으며, 할 수 있는 것은 추모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회한과 추모는 퇴색할 것이고 어머니는 차츰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어머니를 시 속에 고정시켜 두기로 했다. 운명의 날로부터 장례-무덤-사십구재-탈상-회상 등의 과정을 그림을 그리듯이 시로 만들어 나갔다. 아니 영화로 찍은 듯이 생생하게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 탈상까지 일 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스물세 편의 시가 쓰여졌다. 평균하여 한 달에 두 편 정도 쓴 셈이 되었다. 그렇게 큰 수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일년 동안 나는 참으로 절절한 회한과 추모의 감정으로 살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시를 썼다. 그리고 탈상일에 맞추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내었다. 그것이 나의 두번째 시집인 『어머니』이다. 저녁에 장의사가 옵니다. 음력 섣달 그믐의 어둠 내리고 수런수런 사람들이 다녀가도 어머니는 세상 모르고 누워만 있습니다. 뚜둑 뚝 염포가 동여져도 어머니는 무심한 잠만 잡니다. 하이얀 조선종이로 마지막 얼굴을 덮고 어머니의 전신이 싸여집니다. 접은 종이 날개가 양 어깻죽지에서 내리 발까지 비늘처럼 달리고 사르르 살아나는 조선종이 날갯짓 소리가 일면 이승에서의 어머니의 채비는 끝이 납니다. ‘임자 먼저 가면 내가 꼭꼭 묻어주지’ ‘당그랗게 싸고 묶어 내가 꼭꼭 밟아주지’ 아버지의 입버릇이 생생히 이행되어 두터운 천판은 닫히고 가슴 쪼개는 쟁쟁한 소리로 귀마다 은정이 박혀지면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어머니의 형체는 차단됩니다. 이승에서는 다시 못 볼 얼굴이 되고 맙니다. -졸시 「다음날·2」중에서 이 시들 역시 시적 형상화에 있어서 성공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되지 않은 감정으로, 어쩌면 비극적 자아도취의 상태에서 쏟아내듯 써버린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어머니를 시 속에 붙들어 두겠다는 의도는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시 속에도 내 속에도 살아 있고 세계의 도처에 살아있는 것이다. 뒤란을 돌아가면 / 어머니가 있네 / 굴뚝대 뒤켠에도 장독대에도 / 어머니가 있네 / 남새밭 굵어가는 배추속대에도 / 하얗게 피어나는 파종다리 근처에도 / 젊은 어머니가 있네 / (중략) / 어머니는 사방에 있네 / (중략) / 돌아보면 / 형님의 근엄 뒤에도 / 누님의 자애 속에도 / 동이 용이의 / 잔정 밑에도 어머니의 마음이 있네 / 그 아래 아이들 속에도 / 어머니가 있네 / 그 아래, 그 아래, 그 아래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속에도 / 어머니가 있네 / 훠이훠이 달려오는 / 늦가을 눈이 매운 김장김치에도 / 버얼겋게 무친 무우 생나물에도 / 손꺼풀 거치 어머니가 있네 / (하략)
- 졸시「처음이며 끝인 어머니·2」중에서 엎드려 읽으며 탈상제에 바친 얇디얇은 한 권의 시집은 모두를 울렸다. 눌러도 눌러도 속에서 우러나오는 울음만큼 진실한 것이 또 있겠는가? 많지 않은 멀고 가까운 친척들과 우리 형제의 가족들은 울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우애와 화목을 당부하고 또 당부하던 어머니의 뜻이 그렇게 실현되었다. 시는 훌륭하지 못했지만, 그 시로 인하여 어머니는 자주 우리를 찾아 오셨다. 깊은 밤에 창문을 열고 어머니가 찾아온다, 자거라, 자거라, 내 다 안다, 숨어 흘리는 눈물이 더욱 맑고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숨길 것이 없는 너의 야행성 짐승의 진실, 내 이리 다녀도 어여삐 어여삐 살피는구나, 자거라, 자거라, 연기 속에 서린 한숨 내 다 안다. 한숨이 많을수록 많이 사는 이치, 가장 아프게 살수록 가장 참되게 사는 이치, 내 다 안다.
- 졸시 「내 곁의 어머니」중에서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어머니는 하루같이 우리를 돌보신다. 어머니의 탈상을 보내고 어머니의 음덕으로 나는 곧 시간 강사 생활을 마치면서 어렵기만 했던 대학의 전임 교수가 되었다. 3. 이후 1993년에 이르는 6년 동안, 나는 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대에서 미와 예술과 시의 본 모습을 찾아 깊이 깊이 잦아들고 있었다(나는 『존재학적 예술철학』이라는 박사 학위 논문에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서정과 감성이 모조리 사상된 삭막한 개념의 세계였고, 엑스레이로 투시된 물상 같은 것만 바라보며 진행된 논리적 건축이었으며 딱딱하고 메마르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그러한 작업이 끝나갈 때쯤 나는 시의 본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던 것 같다. 언어의 해방으로서의 시와, 은폐성으로서의 시인의 작업과, 확장성과 결합성으로서의 시의 내용과, 일상인의 시민적 삶에 선행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시적 삶이, 비록 대강의 윤곽으로나마 잡히기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철학적 사유만으로 시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시가 철학적 사유만으로 다하여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절망 속에서 풍요하고 윤습한 시의 세계를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사유의 소유와 시의 포기라는 문제 상황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밤 두 시의 적도에서 바랜 양피지를 벗기면 거기 웅크린 어둠이 나오곤 한다. 어둠 속에서 앓는 자작나무 한 그루 거기 붉은 그림으로 걸려 있다. 혼곤한 지상의 잠을 깨우는 그대 파열하는 신음의 파편, 절망하면서 저항하면서 눈물이 되는 우리들 소유는 무겁다. 벗기고 벗기면 마침내 빈 무한후퇴의 적막, 그리고 또 한나절의 기도,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눈 뜨는 점령지의 의식 한 가닥 흉흉한 모습 그러나 허전하다. 어둠과 어둠 사이쯤 혹은 시간의 능선 저쪽에서 연기처럼 피는 말씀의 냄새 눈이 아리고 꽃은 언제 피는가. 자작나무 껍질 안에서 밤 새우는 방황의 주검만 바람 앞에 서고 있다.
-「떠오르는 저편·1」전문 나는 철학을 녹여, 시의 세계로 돌아가 그것을 시 속에 넣어서 구워내는, 그러한 시를 빚고 싶다는 반역의 충동을 느끼며 전율했다. 그러나 곧, <시와 철학>이라는 양 극단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극과 극을 오가면서 방황할 것이 아니라, 양자의 손잡음과 어우러짐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는 철학에게 직관성이라는 장기를 대여하고 철학은 시에게 본질적 사유라는 도구를 양여하는 상부상조의 길이 열려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철학이 시를 다치게 하거나 시가 철학을 상하게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며, 시의 통로로서의 감정과 철학의 통로로서의 이성은 서로 기대며 가야 할 동반자이지 않은가? 그 속에서 살아 있으므로 외롭고 아플 수밖에 없는 자아는 곧 다음 시에 있어서의 시적 자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안지 말아요 내 몸에 손 대지 말아요 저만큼 물러나 있어요. 누가 와서 지핀 불이 지금 내 속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어요. 당신을 태우고 싶진 않네요. 아직은 남아 있어야 할 시간이니까요. 남아 있는 당신의 온전함 앞에서 마지막 내 뼈가 망가지고 싶거든요. 툭 툭 울음소리 하나 남기면서요. 그러나 나는 오늘 외로워요. 섣달의 추위 속에서 이는 반역의 열병을 감당할 수 없거든요. 뒤로 멀리 돌아와 살며시 도닥거려 잠재워 주어요. 저만큼 떨어져서 눈빛으로만 나를 안아 주어요. 검고 깊은 당신의 눈 속으로 들어가 붉게 붉게 피는 나는 꽃이 될거에요.
- 졸시 「난로」전문
이 기간에 쓰여진 시들 중 56편이, 비록 일관된 주제적 특성을 가지지 못할 망정 『엘리베이터 안의 20초』라는 제호의 제3시집으로 묶여 졌다. 처음으로 기획 출판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시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철학이 목말랐고, 철학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시가 그리웠다. 그러나 나의 자리는 두 극지의 어느 한쪽만이 될 수는 없었다. 나의 처소는 방황하는 중간이었으며, 그것을 순례라고 할 수 있다면 또한 동시에 그것은 구도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치고 쓰러질 때까지 힘들게 걷고 또 걸어서 한 십년이 지난 다음, 내 나이 오십 대 후반쯤에 어디 내놓아도 자신 있는 시 한 편 쓰여지면 좋겠다.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이 그러하다. |
'산문 · 칼럼 · 카툰에세이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산문 / 봄의 수상록] 봄을 느끼게 하는 것 ― 思春 /김주완[1991.03.26.] (0) | 2011.02.28 |
---|---|
[散筆] 별꽃 초상화 / 김주완[2007.04.] (0) | 2007.04.17 |
[회고사] 『철학연구』 지령 100집 특별부록 / 김주완 [2006.11.30.] (0) | 2006.11.30 |
[비문] 부모님 묘비 / 김주완 [2006.04.05.] (0) | 2005.05.09 |
[비문] 가족 수목장 숲 비석 / 김주완 [2005.05.08.] (0) | 200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