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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筆] 별꽃 초상화 / 김주완[2007.04.]

김주완 2007. 4. 17. 14:08

<散筆>

별꽃 초상화/김주완


별꽃, 이름이 깜찍하게 예쁘다. 별사탕이 떠오른다. 눈송이의 결정체처럼 반짝반짝 응고된 설탕의 조각들이 닥지닥지 들어붙은 별사탕은 수명이 긴 과자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 초까지 중단되지 않고 생산되는 과자이다. 먼지가 내려앉은 골목 문방구의 유리병 속, 놈들은 눈을 영롱하게 뜨고 촘촘히 들앉아 있다. 오드득, 이뿌리가 자릿하도록 바수고 싶은 놈들의 뼈.


별꽃무늬는 황홀하고 어지럽다. 끝없이 벋어나가는 사방연속무늬,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 영혼이 아득한 현기증을 앓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내 젊은 날의 첫사랑도 그 속에 빠져서 허우적이고 있다. 훌쩍 지나간 40년 동안, 아직도 옥양목 빛 처음의 색깔 그대로이다. 어깨에 어깨를 걸치고 우리 앞으로 솰~ 솰~ 흘러가던 강물, 가장자리의 하얀 모래밭이 꿈결 같은 사금으로 반짝이고 있다.


별,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 중에서 가장 덜 밝혀진 것이 별의 정체이다. 인간은 오늘날 보이지 않는 것도 밝혀낸다. 미시적 세계의 해명과 형체 없는 것들의 파악이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은 보이는 별을 보이는 대로 그저 볼 수밖에 없다. 다가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와 가지는 일은 더더구나 불가능한 일이다. 별은 단지 우리들 머리 위로 있고 다만 우리는 그것들을 아련하게 볼 수만 있을 뿐이다. 더 이상은 어떤 방도가 없다. 그래서 별은 신비하다. 한 번도 온전히 가져보지 못했기에 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변할 줄을 모른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우리는 자꾸 일방적으로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날마다 별을 기다리는 것이다.


2007년 4월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맞닥뜨린 운명적인 봄이었다. 낙동강 옛 나루 근처에서 별꽃 군락을 만난 것이다.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곧 총총하게 꽃이 터져 나올 징후가 자욱하니 퍼지고 있었다. 땅으로 누워서 퍼져가는 줄기들이 이리저리 엉켜 꽃망울을 올망졸망 달고 있었다. 속명으로는 성성초라고 불린다. 흔하디흔한 들풀이다. 흔한 만큼 무심히 지나칠 수 있고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채 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짙고 작은 초록빛 꽃망울 하나에 어느새 눈길이 머물고 말았다. 머문 것이 아니라 문득 붙들려 버린 것이다. 내 의지와 자력으로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땅으로 내린 자잘한 별무리 속에 섞인 포장지 속의 별사탕 하나, 곧장 하얀 별로 태어날 그녀와 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나는 그 후, 별꽃의 만개를 보지 못했다. 시작 점이 곧 끝 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후 내게 남은 한 장의 초상화, 그 속에는 별꽃 같은 여인이 있다. 그녀는 키가 크지 않았다. 아담한 체형이었다. 목이 쭈욱 빠져 올라가 시원한 것도 아니다. 젊고 싱싱한 외모를 가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하얀 얼굴과 맑은 눈망울, 오뚝한 코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꿈에서만 만개하는 별꽃 작은 꽃망울이다. 별꽃의 초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