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칼럼 · 카툰에세이/칼럼·사설

[여행 칼럼] 평화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겨울 나들이 ― 칠곡기행

김주완 2018. 1. 14. 10:31

GTC(경상북도관광공사)

VOL. 09 / 2017 가을겨울 NEWS

p.p.34~35

 

평화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겨울 나들이 칠곡행

 

김주완 시인

 

 

겨울이다. 무채색의 계절이 요구하는 속박은 답답하다. 자유가 인간을 구원한다. 문을 열고 발걸음 가볍게 나설 곳이 있다. 대도시 대구와 공업도시 구미 사이에 있는 가까운 여행지, 칠곡군이다. 쑬쑬한 곳, 칠곡은 평화의 도시이다. 평화는 평화로운 곳에서 구하는 덕목이 아니다. 칠곡은 625 전쟁의 살벌한 전쟁터였고 마지막 보루였다. 칠곡군청 소재지인 왜관읍은 지명이 상징하듯이 한때 왜인들이 터 잡았던 곳이다. 지금은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도시소멸지수가 가장 낮다. 오래 번창할 이 도시는 호국평화의 성지를 자처한다. 평화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겨울 나들이, 칠곡행을 이제 시작해 보자.

 

왜관 IC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가실성당이 있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웅장한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서 있다. 정면의 종탑이 우뚝하다. 영화 <신부 수업>의 촬영지이다. 가실은 이곳 낙산마을의 다른 이름이다. 가실(佳室)아름다운 집을 뜻한다. 여성적이다. 전통적으로 ()’은 안채를 의미하고 ()’은 사랑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실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나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안나상이 돋을새김 되어 있는 안나종에는 라틴어로 새겨진 글귀가 있다. <사막의 아름다움은 꽃처럼 싹틀 것이다.> 사막은 어디인가? 이곳 칠곡일 수도 있고 우리들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꽃처럼 아름답게 싹트는 사막은 사막이 아니라 오아시스이다. 성당내부의 아름다운 색유리화도 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성당의 분위기에 젖으면 방금 떠나온 속세가 까마득하다. 이곳에서 다시 10분 거리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있다. 말씀을 기다리며 침묵하는 수도승의 집, 사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을 따라 기도하고 일하는공동체 수도원이다. 정문 옆 담벼락에는 목자의 선지적 말씀이 현수막으로 걸려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있다.

 

가실성당에서 7분 거리에 구상문학관이 있다. 구도적 삶을 살았던 시인, 천주교적 신앙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시 세계를 구축한 구상 시인을 기념하는 곳이다. 저자 서명본 도서를 전국 1위로 보유하고 있다. 시인의 가족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 <K씨네 가족들>도 걸려 있다. 강물을 보면서 마음을 씻을 수 있는(觀水洗心) 곳이다. 그의 시 정신을 묵묵히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상문학관 2층 사랑방에서 연중무휴로 공부하며 연간집 언령(言靈)’을 제12집까지 내고 있는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회원들이다.

 

구상문학관에서 5분 거리에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이 있다. 전투체험관, 4D영상관, 어린이평화체험관 등의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곳이다. 주변에 왜관지구전적기념관도 있다. 한 나절은 족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 다시 3분 거리에 인도교또는 구 왜관철교로 불리는 호국의 다리가 있다. 칠곡에서 벌어졌던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현장이다. 철골 구조물 군데군데 총알 자국과 포탄 자국이 있으며 트러스가 휘어져 당시 전투의 처절함을 지금까지 증거하고 있다.

 

왜관 낙동강 양안에는 강변공원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지역마다 둘레길은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제각각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피의 강이었다. 병사들의 시신이 낙화처럼 쌓이던 강, 철교가 폭파되어 끊어지면서 피난민들이 개미처럼 수장되던 강이었다. 그 강의 양안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동쪽보다 서쪽 길의 분위기가 더 은은하다. 높직하니 조성된 무지개 길을 걸으며 말없는 강을 내려다보는 일은 사뭇 경건하다. 이 겨울, 눈 내린 이 길은 곧 평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평화로운가? 평화는 어느 날 문득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수확물이다. 노력은 의식에 수반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그가 가진 평화에 대한 의식만큼 평화로울 수 있다. 평화의 성지가 되고자 하는 칠곡군의 방향 설정은 옳고 칠곡군민은 슬기롭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망각했던 자유와 평화의 정체성을 다시 건져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