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제4호 <김주완 칼럼>
보수와 진보
김주완
(칠곡포럼 공동대표)
경북 칠곡 왜관 출생
시인(구상 시인 추천으로 1984 『현대시학』 등단)
철학박사(대구한의대 교수, 대한철학회장, 한국동서철학회장, 새한철학회장 역임)
한국문협 이사, 경북문협 회장 역임
한국문학상, 경북문학상, 경북예술상 대상 수상
현) 경북예총 수석부회장, 경상북도 문학관등록심의위원, 운제철학상운영위원장
1.
‘진보’와 ‘보수’라는 말은 마치 정치권의 전유물처럼 사용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진보로, 자유한국당은 보수로 지칭된다. 바른미래당은 보수진영으로,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범진보진영으로 불린다. 보수 진영을 우파, 진보 진영을 좌파라고도 한다. 이러한 구분은 타당한가? 참된 진보와 보수란 과연 무엇인가?
2.
글자의 뜻 그대로 진보는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는 말이며 보수는 “보존하고 지킨다”는 말이다. 보수는 안정을, 진보는 변화를 추구한다. 가진 자는 유지하고 싶고 못 가진 자는 가져 보고 싶다. 가진 것을 유지하려면 안정되어야 하고 없던 것을 새로 가지려면 어떻게든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보수는 현상유지를 진보는 개혁을 최상의 덕목으로 삼는다. 진보는 청년의 덕목이고 보수는 중장년의 덕목이다. 신체적으로도 그러하다. 청년은 솟아오르는 시기이다. 힘이 넘치고 모험적이며 도전적이다. 겁 없이 앞만 보고 질주한다. 단점이라면 경험이 부족하고 신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장년은 내리막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고 일에도 의욕이 감소한다. 지금의 건강상태와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 경험이 많고 신중하므로 실수할 일은 적다. 단점이라면 이때부터 꼰대가 되어 가기 쉽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엔 진보였던 사람이 늙어 가면서 보수가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순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런 것도 아니다.
3.
현대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대중은 보수적이어서 이해한 것에 머문다”고 한다. 이 말은 보수의 안정 지향성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사회와 국가의 유지나 역사의 계승은 물론 대중적 지지에 기반한다. 정치집단인 정당은 대중적 지지에 연연하며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정당은 지지자를 규합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정권을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치는 스포츠와 유사하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사람들은 자기의 승리라고 생각하며 기뻐한다. 스릴도 있다. 상대 정당이나 상태 팀이 실수하고 패배하기를 바란다. 심리적ㆍ정서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스포츠는 다만 즐기고 재미를 느끼는 대상이지만 정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은 태생적으로 편가르기를 좋아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소속감은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4.
진보 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아 선거에 승리하고 정권을 잡는다면 그때부터 그 정당은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보수적이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행위일 뿐이다.
엄밀하게 말했을 때, 진보가 다수가 되면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다수가 진보적이어서 개혁을 추구한다면 그 사회는 불안정할 것이며 방향을 상실할 염려가 높아진다. 원리는 간단하다. 앞서가는 진보는 소수이고 현실을 지키는 보수는 다수이다. 순수한 진보는 소수일 때만 진보일 수 있다. 정권을 쟁취하거나 유지하고자 하는 진보 정당의 지지자 중 일부는 어쩌면 순수한 이념의 신봉자가 정당의 시녀로 전락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보수가 강조되어야 할 시대도 있고 진보가 강조되어야 할 시대도 있다. 보수와 진보는 시대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시대를 끌고 가는 두 개의 바퀴이다.
5.
정치적으로는 진보인 사람이 도덕적으로는 보수인 경우가 있다. 진보와 보수는 부문과 지향에 따른 구분의 기준이지 어느 하나가 사람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절대적 원리가 될 수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보수적 측면과 진보적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다만 그때그때의 선택은 필요가 이를 규정한다. 진보와 보수는 선택의 국면을 마주한 모든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다만 하나의 구분지에 불과하다. 결코 정치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말이다. 참된 진보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소수자의 덕목이다. 신념과 긍지가 강한 영원한 이상주의자,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인격자가 명실공히 참된 진보이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합리화 시키고 어떻게 미화 시키든 간에 권력의지가 강한 정치인일 뿐이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은 건강한 보수와 순수한 진보가 이끌어 간다. 보수와 진보는 상관개념이며 유동개념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절대적 보수와 절대적 진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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