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칼럼 · 카툰에세이/칼럼·사설

[김주완의 문화칼럼 12] 칠곡의 유월[칠곡신문 : 2009.07.08.] / 김주완

김주완 2009. 5. 1. 20:58
<
김주완의 문화칼럼>칠곡의 유월
2009년 07월 08일(수) 21:06 [칠곡신문]
 
전쟁의 아픔 치유, 밝은 내일을…


 
 
↑↑ 김주완 前교수
대구한의대
 
한국의 유월은 온통 초록빛이다. 초록빛 물감을 통째로 엎질러 놓은 것처럼 시푸른 생명이 충일한다. 그러나 칠곡의 유월은 석류꽃 다홍빛이거나 한련화의 눈물겨운 선홍빛이다. 59년 전 이곳은 한국전쟁의 치열한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다부동 전투는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처참한 전투로 한국전쟁사에 핏빛으로 기록되어 있다.

작오산과 유학산 전역에서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는 그때 뿌려진 피아간의 젊은 병사들의 피가 아직도 마르지 않고 불타오르는 것이리라. 지금은 말없이 흐르는 낙동강물과 드넓은 모래사장이지만 그날은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젊은 병사들의 시신이 산처럼 이곳에 쌓였을 것이다. 전후 세대들에겐 실감나지 않는 일이겠지만 생존하고 있는 참전용사들이나 전쟁을 기억하는 60대 중반 이상은 그날의 참상을 지금도 생생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왜관읍 왜관리 211-15번지, 이곳에 있었던 8칸 맞배기와집, 필자가 태어나 자란 이곳은 피란에서 돌아와 보니 붕대와 약솜과 약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북한군의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것이다. 뒷밭엔 큰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폐기된 의료기와 용품들이 버려져 있었다. 집 앞 도로변 도랑에서는 무성한 풀숲 아래로 군데군데 촉루들이 뒹굴고 있었다. 반계천에서 지뢰를 밟은 친척 아저씨들은 소달구지를 타고 왜관 병원으로 실려오곤 했다. 박격포 탄피를 잘라서 만든 재떨이가 집집에서 흔하게 쓰였다. 작오산의 참호는 오랫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고 구덩이 가득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었다.

호국의 고장 칠곡의 유월에 이곳에서 거행되는 추모행사는 생각보다 적다. 왜관읍 삼청리의 충혼탑에서 현충일 추모행사가 있고 나면 연로한 6·25참전유공자와 재향군인회, 그리고 젊은 캠프캐롤 미군 병사들이 합동으로 가지는 추모식이 작오산 추모비에서 거행된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충혼탑에서 합동위령제가 올려지고 뒤이어 6·25전쟁낙동강전투군경 및 UN군합동추모위령제가 낙동강 인도교 밑에서 거행된다. 인도교 밑의 합동추모위령제는 금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가지게 된 행사이다. 늦어도 많이 늦은 위령제이다. 그것도 뜻있는 지역민들이 앞장서서 성사시킨 행사이다. 공식적인 행사는 이 정도가 고작이다.

보존해야 할 역사적 현장이 방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왜관 인도교가 대표적인 예이다. 북한군의 도하를 막기 위하여 끊었다가 다시 이은 낙동강 철교가 이제는 산책로가 되어 고즈넉하게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도 그동안 미흡하기만 했다. 살갑게 관심을 가진 지도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외된 곳을 구석구석 살뜰하게 살피는 자가 영원히 사랑받는 지도자이다. 참된 지도자와 뜻있는 지사들이 있다면 칠곡의 유월은 아프면서도 밝을 수 있다.

 
칠곡신문기자 newsir@naver.com
“언론사 명훈”
- Copyrights ⓒ칠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