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칼럼]
순심을 추억하다 (1)
김주완 동문
(중17회)
1949 왜관 출생
교육학 석사/철학박사/시인
전 대구한의대 교수
(대학원장/교육대학원장/국학대학장/교무처장/기회처장/행정처장/홍보실장 등 역임)
대한철학회장/한국동서철학회장/새한철학회장 역임
대구교육대학교 겸임교수(現)
기억은 끄집어내는 것이고 추억은 끌려드는 것이다. 시험지의 정답을 찾는 것은 기억력에 의존한다. 저장된 것을 불러내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응용력과 분석력, 종합력 등이 가세한다. 이에 반해 추억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드는 것이다. 정신의 다른 능력들이 굳이 동원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정서적 기능만 자동으로 작동한다. 기억은 삭막하지만 추억은 윤습하다. 기억은 인위적이지만 추억은 자연적이다. 기억하면서 우리는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추억하면서는 안온함과 그리움을 느낀다. 기억이 부성의 모습이라면 추억은 모성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필자의 순심에 대한 추억은 순심중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인 왜관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대 후반에는 각종 국경일이나 기념일 행사 후에 으레 가두 행진이 있었다. 맨 앞에는 순심중고등학교의 악대부가 행진곡을 합주하면서 행렬을 이끌어 나갔다. 트럼펫, 트롬본, 호른, 튜바 등의 금관악기와 플루트, 클라리넷 같은 목관악기는 햇빛을 받아 광채가 번쩍거렸고 심벌즈나 큰 북과 같은 타악기는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로 지축을 흔들었다. 대원들의 제복은 칼날처럼 줄이 선 바지에서부터 몸에 착 달라붙는 상의까지 멋의 극치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우리를 압도했던 것은 악장의 늘씬한 키와 시원스런 걸음걸이는 물론, 절도 있으면서도 현란한 손끝에서 움직이는 지휘봉이었다. 공처럼 생긴 지휘봉의 손잡이에 달려 출렁거리는 황금빛 수술이었다. 어느새 도취되어 악대부 옆을 따라가던 우리의 발걸음에는 절로 힘이 들어갔다. 막 신이 났다.
순심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내내 여학생들의 세일러복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른다. 세일러복을 동경한 것인지 그 옷을 입은 여학생을 동경한 것인지는 지금도 분간이 잘 되지 않지만 세일러복 속의 여학생들은 앞모습뿐만 아니라 뒷모습까지 단아하고 깔끔하였다. 그때 중학교 여학생들은 목덜미 뒤를 쳐올린 단발머리를 했고 고등학교 1학년은 귀밑까지 내리는 단발머리, 2학년은 두 갈래로 묶은 머리, 3학년은 두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를 했다. 목 뒤로 걸쳐진 네모진 깃 위의 단발머리나 혹은 묶은 머리와 땋은 머리에서는 은은한 백합향이나 난향이 곧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굵게 접혀진 주름치마는 차랑차랑하게 자부심과 품격을 흩뿌리고 있었다. 사춘기를 막 보내고 있던 중학생들은 그런 모습의 여학생들이 멀리서 다가오면 가슴이 멎어버리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남자부와 여자부가 서로 다른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기에 남녀 학생들이 함께 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매년 초가을쯤에 전교생이 나서는 자전거 하이킹이 있었다. 이때만큼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모두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원거리의 학생들 대부분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자전거였기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 자전거를 구해서 오면 전교생 모두가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가 되었다. 상의는 교복을 입고 하의는 하얀 체육복 바지를 입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바람을 가르면서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하이킹의 행렬은 길게 십리에 이르렀다. 자전거마다 매단 삼각 깃발이 펄펄펄 날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노랑나비가 줄을 지어 나풀나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때 얼굴에 부딪치던 상쾌한 공기는 지금도 생생하지만 그 후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아련하면서도 참으로 그리운 그 시절의 장면들이다.
학창시절을 보낸 시대적 배경에 따라 순심에 대한 추억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기수에 따라 서로 다른 그림들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지 않은 한 가지는 그 추억이 애틋하고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점이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은 한시적이지만 추억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순심을 추억하면서 순심인들은 활력을 얻는다. 생기를 얻는다. 순심인의 자부심과 높은 응집력은 순심에 대한 추억에서 나온다. 순심의 추억 속에서 순심인은 하나가 된다. 순심은 위대하고 순심의 추억은 심해처럼 깊다. 그리하여 순심인의 꿈은 원대할 수밖에 없고 순심인의 역할은 장대할 수밖에 없다. 순심인은 순심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된다. 순심이여, 영원하라! 순심인이여, 거침없이 비상하라! 끝없이 솟구쳐 오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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