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31)>
응아 소리
응아 소리는 고고(呱呱)의 소리이다. 갓 태어나는 신생아가 세상에 나오면서 처음으로 우는 울음소리가 응아 소리이다. 그 소리는 한 인간의 삶이 시작하는 소리이자 대(代)가 이어지는 소리이며 인류의 역사가 간단(間斷)없이 진군하는 소리이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중요한 때에는 이와 같이 소리를 낸다. 소리는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만드는 신호이다. 시작할 때나 무엇인가 만들어 질 때는 어김없이 소리가 난다. 따라서 소리는 살아 있음이며 정적은 죽어 있음이다. 응아 소리는 삶의 시작을 알리는 첫 소리이다.
응아 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와 유엔인구기금(UNFPA)이 공동으로 발간한 ‘2008 세계인구현황보고서 한국어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15~49세의 가임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수)은 1.20명으로서 156개국 중 155위를 차지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홍콩으로 0.96명이다. 홍콩이 도시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저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평균(2.5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선진국(1.60명)과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치이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여성 1명당 평균 6명이던 출산율이 1984년부터 2명 이하로 감소되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1990년 1.6명, 2000년 1.4명에 이어 계속하여 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고령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75.1세(29위), 여성 82.3세(16위)로 선진국 평균(남성 73.0세, 여성 80.2세)보다 높다. 최고 장수국은 남성은 홍콩(79.5세), 여성은 일본(86.2세)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 세계 평균수명은 남성 65.1세, 여성 69.6세이다. 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를 넘으면 고령 사회(aged society)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2000년에는 7.1%가 되어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2022년에는 14.3%에 이름으로써 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소인구(0~14세)의 감소와 노인인구의 증가는 결국 생산인구의 비율을 저하시키는 한편 사회의 노인부양부담을 증가시키게 된다. 노인부양지수는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인구 100명에 대한 65세 이상의 인구비율을 말하며, 이것은 생산인구가 노년인구에 대해 갖는 부양부담의 상대적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로 쓰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에는 5.3%, 2000년에는 7.1%에서 2021년에는 18.4%로 증가할 것으로 예견되어, 인구의 노령화에 따른 사회적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2000년 기준으로 보아 한국은 7.1%임에 비해 세계 최고인 이탈리아는 18.2%에 달했고 일본은 17.1%, 독일은 16.4%를 기록하고 있다.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선진국들에 비해서 한국은 아직은 낮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다.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는 이와 같이 밀접한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폴 휴잇(Paul S. Hewitt) 미국 세대 간 평등을 위한 연구소(Americans for Generational Equity) 대표는 2009년 2월 11일 “한국의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 부재로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한다면 경제위기와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으로 한국의 상황에 맞는 저출산 극복 방안은 가족 중심 복지국가를 이루어야 한다. 가족 중심 복지국가는 서방 복지국가와는 다른 여성의 출산 장려 등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새로운 문화국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다른 저출산 극복 방안으로는 “25세 미만 조혼자에게 현금보너스 지급, 다자녀가정에 대한 지원 강화, 보육시설 지원강화, 직장 내 남녀의 동등한 대우,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고용주의 배려 등”이라고 덧붙였다.
칠곡문협 회원이자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회원인 배성도 시인은 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통찰하면서 <응아 소리가 듣고 싶어라>는 제목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서쪽 깊숙이 머물던 태양이
동쪽으로 가까워 질 때쯤
만삭이 된 암고양이가
콘크리트 벽 귀청을 찢어 놓는다
응아 응아 응아
새색시 보름달 안고 점점 고통이 부풀 듯
은하수를 삼킨 감꽃들 초가지붕 위에서 등불로 춤추고
문지방너머로 놋대야가 들락거린다
할머니 눈가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어려 있고
닭 울기 전 난전 길나선 할아버지는
물 좋은 미역 꾸러미
두루마기 걸치듯 두 겹으로 둘러메고
곧바른 길을 둘러오셨다
아버지는 왼새끼줄을 꼬아 검정숯덩이, 빨간 고추를 솔가지 사이로 매달더니
출입금지 구역 금줄을 내건다
응아 응아 응아 응아
하늘을 찢는 그 소리…
― 배성도, <응아 소리가 듣고 싶어라> 전문
집에서 출산을 하고 금줄을 내거는 풍경은 아득한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아무도 집에서 출산을 하지 않는다. 산부인과에서 전문의에게 맡겨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한다. 이즈음에는 출산율의 저하에 따라 산부인과 병원마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가정 출산의 전통적 과정을 시인은 미려한 필체로 그려낸다. 시의 첫머리에서 새벽녘에 우는 암고양이 울음소리를 대두 시킨다. 그것도 만삭의 암고양이다. “응아 응아 응아” 콘크리트 벽을 뚫고 암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다. 암고양이는 지금 출산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을 수 있다. 아니면 곧 다가올 출산의 시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암고양이가 새끼를 잉태하던 그 순간에도 이러한 울음을 울었다. 귀를 찢는 날카로운 울음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잉태도 생명의 시작이고 출산도 생명의 시작이다. 잉태는 어미의 뱃속에서의 생명의 시작이고 출산은 어미의 배 밖에서의 생명의 시작이다. 그러한 시작은 소리로 온다. 시인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시적 장치로서 모두(冒頭)에 암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름달과 임산부의 부풀어 오른 배는 닮았다. 부풀대로 부풀면 산고가 찾아온다. 간헐적으로 오던 진통의 주기가 짧아진다. 통증이 극심해진다. 사람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의 끝점에서 바야흐로 해산은 시작된다. 눈앞에 명멸하는 별들이 가물거린다. 시인은 이 순간을 “은하수를 삼킨 감꽃들 초가지붕 위에서 등불로 춤”춘다고 묘사 한다. 여기서의 “감꽃들”이 곧 명멸하는 별들이다. 이때쯤 “문지방 너머로 놋대야가 들락거린다.” 이제 곧 고고의 응아 소리를 내며 세상에 첫발을 내디딜 신생아의 태를 가르고 씻기기 위한 따뜻한 물이 놋대야에 담겨 있을 것이다. 씻긴 물은 내다버릴 것이다. 1960년대 이전의 한국적 출산의 풍경이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시어머니는 태어날 아이가 손자이기를 소망하였을 것이다. “할머니 눈가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어려 있고”라는 표현이 이를 암시한다. 첫새벽에 길나서 난전으로 간 할아버지도 같은 소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물 좋은 미역 꾸러미/두루마기 걸치듯 두 겹으로 둘러메고” 소망의 기쁨을 오래 즐기면서 바른 길을 일부러 둘러 갔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한국의 남아선호 사상을 시인은 이와 같이 그리고 있다.
기진맥진하던 해산이 끝나고 나면 남편은 대문에 금줄을 친다.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는 줄이 금줄이다. 잡인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표식이면서 또한 동네 사람들에게 출산을 알리는 자랑이기도 하다. 금줄은 왼새끼로 친다. 새끼는 대개 오른쪽으로 꼬지만 이와는 달리 왼쪽으로 꼰 새끼가 왼새끼이다. 왼새끼는 일상적 공간과 신성한 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행위이다. 오른새끼는 일상적인 것, 인간 세상에 속한 것을 의미하고 왼새끼는 성스러운 것, 신성의 세상을 의미한다. 민속에서는 부정을 막아주는 비결이 왼새끼에 있다고 믿는다. 귀신이 밤새 오른쪽을 따라 돌며 새끼를 풀려고 노력하다 못 풀고 날이 밝으면 돌아간다는 믿음과 속설 때문이다. 왼새끼 줄에 붉은 고추와 숯과 솔가지를 걸어 금줄을 만든다. 여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숯을 거는 이유는 악귀를 쫓고, 청결하게 살라는 뜻이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에 고추를 건다. 형상과 어휘의 유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고추는 벼슬과 돈을 상징한다.
금줄 안의 신성하고 청결한 무풍지대에서 “응아 응아 응아 응아/하늘을 찢는 그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들리는 바로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은 스스로 삼가며 겸손할 줄 알았던 때이다.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신비를 공경하면서 두려워할 줄 알았던 때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이제 인간은 생명을 공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금줄을 치지도 않고 산부인과와 조리원에서 해산을 한다.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속화되어 있다. 그들은 이제 어떠한 소리에도 외경하지 않는다. 시인은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응아 소리가 듣고 싶어라>는 시로써 호소한다. 자연과 생명의 신비 앞에서 다시 한 번 경건해지자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경각심을 깨우쳐 주는 자이고 경고하는 자이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시인의 현존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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