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30)>
야간열차
야간열차가 어둠을 뒤집어쓰고 굴을 파 나간다. 두더지 같다. 밀려나간 어둠이 잠시 부풀어 오르지만 어둠 덩어리가 더 큰 어둠 속으로 묻혀 들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전조등의 가늘고 긴 불빛이 구물구물 길을 찾고 있다.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인데도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기에 찾을 수밖에 없다. 옆구리에 촘촘히 매단 차창이 불빛을 조금씩 흘리며 유성처럼 흐르고 있다. 객실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기대어 서 있다. 그들은 열차에 실려서 모두들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다.
가만히 보면 야간열차는 우리들 생을 닮았다. 이미 정해져 있는 행로를 달려가면서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야간열차와 인생이 꼭 같다. 어둠을 헤치며 피로한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꼭 같다. 객석에서 간혹 짧은 웃음꽃이 피듯이 인생에도 잠시 짜릿한 행복이 있다. 그러나 인생은 행복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겹고 불편할 때도 있으며 외로울 때도 있다. 무리 지어 가는 사람들은 덜 외롭다. 어우러져 있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홀로 가야 하는 사람은 어디선가 내려야 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쓸쓸하게 실려 가야만 한다. 이름 모를 역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내리고 또 한 떼의 사람들이 올라탄다. 기차는 쉼 없이 달리고 승객들만 자꾸 교체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야간열차는 시간이나 세월과 등치된다.
야간열차는 밤을 새워서 달리는 열차이다. 저녁에 타고는 밤새 달려간 후 아침에 내리는 것이 야간열차이다. 이즈음 국내에서 운행되는 야간열차는 몇 대가 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심야열차가 몇 대 안 된다는 말이다. 자정부터 새벽 4시나 5시까지 한반도에서 운행되는 심야열차는 아마 대여섯 대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나마 영동선이나 태백선을 달리는 무궁화호가 고작이다. 새벽까지 달리는 호남선 무궁화호도 한 대 정도는 있는 것 같다.
유럽이나 중국 또는 일본 같은 곳은 아직도 야간열차가 많이들 운행된다. 유럽 같은 경우는 유로패스 하나로 전역을 여행할 수 있다. 배낭여행 족은 런던에서 브뤼셀로, 암스테르담에서 뮌헨으로, 베니스에서 비엔나로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이동하기도 한다. 시간도 아끼고 숙박비도 아끼는 것이다. 유사한 형태로 일본에서는 야간버스나 야간열차를 탈 수 있는 JR 패스가 있다.
한국에도 1960년대까지는 야간열차가 아주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는 열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이다. 열차가 아니면 장거리 여행을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던 시절이다. 열차를 타기 위해선 미리 달걀을 삶고 옥수수를 찌고 고구마를 삶아야 했다. 플랫폼에서는 사과 광주리를 여러 개 들고 뛰어다니며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꼬치와 우동을 파는 간이식당도 있었다. 객실의 판매원은 김밥을 들고 다니면서 팔았다. 최소한 한 끼나 두 끼의 식사를 해결하면서 밤을 새워 열차를 타야만 했다. 객실에는 음식냄새가 배어서 늘 메스꺼운 냄새가 났다. 객실 통로는 물론이고 승강구 계단에까지 신문지를 깔고 사람들이 앉아서 갔다.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1970년대 초쯤 고속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철도는 교통수단의 중심적 위치를 조금씩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마이카 시대가 오면서 교통수단은 이제 더 이상 중심이 없는 다원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2004년에는 KTX가 개통되면서 전국은 일일 생활권으로 좁아졌다. 열차가 고속 교통수단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야간열차는 줄어들었다. 좁은 땅덩이 한국에서 밤을 새우면서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생활수준과 경제력도 그만큼 나아져서 열차비 정도는 사람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야간열차를 탈 때처럼 마음먹고 차비를 모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몇 개의 노선에서 운행되는 야간열차는 이제 멋스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멋진 추억 여행의 공간으로서 야간열차의 위상이 바뀐 것이다. 국내의 여러 명소를 행선지로 하는 무박2일의 야간열차 여행 상품이 출시되고 사람들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기차여행 상품은 야간열차뿐만이 아니다. 경영개선을 위하여 철도공사는 기차를 이용한 갖가지의 여행상품을 개발하여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일일 여행이 주종이다. 스키 열차, 눈꽃 여행, 벚꽃 축제, 별빛 여행 등 그 이름도 많아서 모두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권정숙 시인은 야간열차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아스라한 안개바다를 가르며
어딘가로 떠나는 길손들이
쏟아지는 졸음 속으로 잦아드는
야간열차의 선반 위에
올망졸망 보퉁이 입 다물고 있다
저 멀리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를
밤새 가로지르고
성난 파도처럼
어둠을 뚫고 나가는
검은 등짝의 딱정벌레 한 마리
내뿜는 입김이 이슬로 맺힌다
누군가의 눈물 같다
― 권정숙, <야간열차> 전문
시인은 안개 낀 밤을 안개바다라고 명명하고 있다. 모세의 기적처럼 기차는 안개바다를 두 쪽으로 가르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어딘가로 떠나는 길손들이” 객석에서 졸고 있다. 삶이 피로한 자들이 밤을 새워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다. “야간열차의 선반 위에/올망졸망 보퉁이 입 다물고 있다.” 커다란 여행가방도 아니고 배낭도 아닌 보퉁이들이 그 주인들처럼 피로에 찌들어 던져진 채로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곤한 자들은 말조차 잃어버린다. 그들의 삶의 증거인 보퉁이조차도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러한 정경으로 보아 이 시의 배경은 1960년대 이전인 것 같다.
화자는 “저 멀리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은/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를/밤새 가로지르고” 있다고 한다. ‘고비사막의 모래바람’과 ‘평행선’이 은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비란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뜻이다. 그러나 모래땅이란 뜻은 내포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고비사막 대부분의 지역은 암석사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래사막으로 된 지역은 매우 적다. 그러므로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은 ‘흔할 것 같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것’, ‘매우 귀한 것’을 의미한다. ‘평행선’은 가까이 가고 있어서 곧바로 보이면서도 ‘서로 만날 수 없는 것’, ‘합쳐질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은 암석사막처럼 메마른 생의 현실에서 소수에 불과한 풍요한 자와 부유한 자들의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평행선 위를/밤새 가로지”른다는 것은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에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풍요와 부(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곤궁한 자들이 야간열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한 1연과 이어지는 의미망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는 “검은 등짝의 딱정벌레 한 마리”가 “어둠을 뚫고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성난 파도”처럼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딱정벌레는 기차를 지칭할 수도 있고 생이 고단한 곤궁한 자의 자기 방어적 전투의지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생이 곤궁한 자들은 딱정벌레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어야만 한다. 딱정벌레 같은 야간열차를 타야만 한다. 살기 위해서이다. 절박하게 달려가야 하는 그들의 입김은 뜨거울 수밖에 없고 숨이 차도록 내뿜는 그 입김들이 이슬로 맺힌다. 증기기관차의 연기가 차창에 이슬로 맺히는 것을 보면서 화자는 “누군가의 눈물 같다”고 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과연 누구인가?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삶이 피로한 사람들의 절박한 삶에 보내는 시인의 애정 어린 시선에 머무는 키워드가 곧 “누군가의 눈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생래적으로 휴머니스트이다. 약한 자, 가지지 못한 자 쪽으로 기우는 것이 시인의 심성이다. 작고 여린 것에 대한 사랑, 그것은 어쩌면 시인의 권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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