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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29] 감기-김현숙 시인[칠곡인터넷뉴스]

김주완 2009. 1. 31. 15:37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29)>

감기


감기의 계절이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흔히 감기에 걸리고 며칠씩 앓는다. 어쩌면 겨울철에 우리가 앓는 친근한 질환이 감기이다. 보통의 감기는 약을 먹으면 3일 정도, 약을 먹지 않으면 일주일 정도 앓아야 된다고 말들을 한다. 감기에는 근본적인 치료약이 없고 대증요법만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재채기와 콧물, 발열이나 오한, 두통과 근육통, 기침과 가래 등을 완화시키는 감기약은 각각의 증상에 대응하는 처치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올해는 독감 비상이 걸렸다. 독감 환자가 작년의 3배라고 한다. 금년의 독감은 쉽게 완치되지를 않고 오래 가는 것이 특징이다. 인플루엔자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사람들은 특히 조심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해서 독감이 완전하게 예방되는 것은 아니다. 독감 바이러스는 그 종류가 아주 많고 해마다 변종 바이러스도 나타난다. 매년 나오는 독감 백신은 그 해에 유행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몇 가지 종류의 바이러스에 대해서만 개발한 항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해서 무조건 안심할 일은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 이동제한과 살 처분 등의 방역조치가 즉각적으로 취해진다. 높은 폐사율은 물론, 전파가 빠르고 병원성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변종될 수 있는지, 또는 사람에게 바로 감염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둘러 공포에 떤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기가 유행하면 ‘노약자와 어린아이는 주의해야 한다’는 당부가 언론과 방송을 통해서 요란하게 알려진다. 노인과 어린아이는 신체의 면역력이 약한 계층이다. 감기 그 자체도 문제지만 감기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합병증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치료시기를 늦추면 감당하기 힘든 다른 병으로 진전되고 목숨까지 잃을 수가 있다. 면역력이 강한 청장년층이라고 하더라도 유행성 독감에 걸리게 되면 심한 고통을 겪게 되고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감기를 일컫는 우리의 고유어로 ‘고뿔’이라는 말이 있다. 고뿔의 고는 코의 옛말이고 뿔은 불의 옛말이라고 한다. 코에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리면서 마치 그 불을 끄려는 듯이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는 뜻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고뿔이 괴로운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독감은 고뿔의 외연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까 고뿔은 그저 보통의 감기 정도를 일컫는 말이며 주로 찬바람이나 찬 공기에 오랫동안 노출됨으로써 발병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사유를 조금 확장시켜 보면 감기는 몸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마음의 감기도 있고 정신의 감기도 있다. 사회적 감기도 있고 지역적 감기도 있다. 나아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감기도 있다. 미국발 경제 한파에 고통 받고 있는 소상공업자는 경제적 감기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유를 더욱 확장시키면 지구도 감기를 앓을 수 있고 태양계도 감기를 앓을 수 있으며 은하계나 우주도 감기를 앓을 수 있는 것 같다. 지구 온난화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자연 재앙은 사람으로 치면 오뉴월 감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나루 동인 김현숙 시인은 감기를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저녁 무렵 바람은

살갗이 따갑도록 차가웠다

그 바람 나를 따라온 듯

밤새 신열에 들떠 바람꽃이 피고

내 사지를 뒤틀어 놓는 고통

나는 꼼짝없이

그것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기억

째깍 째깍

아침을 향해 가는 느리기만 한 초침

길고긴 터널은 도무지 끝날 줄 모른다

밤과 아침 사이

얼굴에 내린 이슬이 나를 깨운다


        ― 김현숙, <감기> 전문


살갗이 따갑도록 차가운 저녁 바람이 따라와 감기가 들었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바람을 떨쳐두고 집으로 돌아왔다면 화자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녁 찬바람은 화자에게 들어붙어 따라왔다. 이처럼 뗄 수 없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이 있다. 반갑지 않은 것일수록, 유익하지 않은 것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필요한 것, 유용한 것은 취하려고 할수록 도망간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이로움은 구하기가 어렵고 해로움은 피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감기가 든 화자는 밤새 신열이 오르고 피부에는 열꽃(바람꽃)이 돋아난다. 극심한 고통으로 사지가 뒤틀린다. 이 정도면 감기도 보통의 감기가 아니라 급성 독감쯤 되는 것 같다. 화자는 말한다. “나는 꼼짝없이/그것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점령은 ‘차지하여 거느림’이다. 점령을 당한 자는 단지 지배될 뿐이다. 그는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점령군의 뜻과 명령에 다만 따라야 하는 것이 그가 할 일의 전부이다. 화자는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밤새 신열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기억”만이 화자에게는 의식된다. 극심한 고통은 의식을 흐리게 한다. 의식은 그런 의미에서 전적으로 몸에 예속되어 있다. 몸의 고통은 의식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감기가 몸을 지배하고 몸이 의식을 지배한다. 그러한 지배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극심한 고통이다. “째깍 째깍/아침을 향해 가는 느리기만 한 초침/ 길고 긴 터널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시간은 느리게만 가고 고통은 길고 멀다.


밤에 앓는 몸의 고통,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을 줄이기 위하여 우리는 응급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야심한 시간에 응급실을 찾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밤의 응급실은 무력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들은 억지로 참는다. 날이 밝으면 병원 진료를 받을 요량을 하면서 몸으로 버틴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밤은 샐 줄을 모른다. 어른의 신열은 어른이니까 참는다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가 고열이 오르고 경기(驚氣)마저 한다면 부모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른다. 절박한 심정으로 황급하게 응급실로 달려간다. 그러나 응급실은 여유만만 하다. 순서를 기다려야 겨우 가능한 응급진료 접수는 물론, 여러 가지 검사를 느릿느릿 하고 난 후에야 처치나 치료에 들어간다. 그것도 수련의나 전문의 과정의 의사들이 대개 맡는다. 전공 교수가 야간 응급실 진료를 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일에 지친 간호사들도 냉랭하다. 보호자의 마음은 초조하고 답답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통증은 참으로 극심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고 증세가 완화되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따라서 사람들은 여간 급하지 않으면 집에서 병마와 싸우며 버틴다. 응급실에 가느니 차라리 끙 끙 앓으며 밤을 새운다.


“밤과 아침 사이/얼굴에 내린 이슬이 나를 깨운다”고 화자는 말한다. 혹독한 감기를 밤새 앓은 사람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쉼 없이 닦아내어도 얼굴엔 땀방울이 자꾸 맺힐 것이다. 그러나 그 땀방울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라면 어제 밤 따라온 찬바람은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환자는 감기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 된다. 땀방울이 “나를 깨운다”는 것은 제 자리로 돌아온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감기의 지배에서 풀려난 몸, 몸의 지배에서 벗어난 의식, 극심한 고통은 한 고비를 넘기고 모두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인의 눈길은 잠시 인체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운 항상성에 머문다.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 평강이 찾아온다. 하루 밤 모질게 앓은 감기의 경험을 통해서 시인은 삶의 근원적 모습을 통찰한다.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힘, 그것이 시인의 예지력(叡智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