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시집 <어느 곳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는> [표4 추천글]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대개 삭막해지고 정서가 메말라진다. 그러나 이연주 시인은 세월을 거꾸로 산다. 만년 소녀이다. 인상은 후덕하고 마음엔 부처가 들어앉아 있는데 무엇보다 시가 곱고 맑다. 푸른 날들에 박힌 분홍의 못 아직 그대로이고 기차의 꽁무니를 따라오던 그믐달이 은행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다. 길고 가는 참빗 빗줄기 사이로 사람들의 살갗에 청보리 고운 물이 들고 찔레꽃은 청상의 하얀 치마 같다. 가을바람에 상처 난 노란 모과가 연등처럼 환하다. 그렇다. 독실한 불교도인 이연주 시인에게 있어서 시작(詩作)은 곧 연등을 내거는 일이다. 시인의 말처럼 팍팍한 삶에 숨 고르는 여유를 시(詩)를 통해서 이연주 시인이 한결같이 얻기를 바란다. 맑고 고운 순수의 시심, 오래 반짝이기를 기대한다.
-김주완(시인, 전 대구한의대 교수)
너무나 정직해서 이쁜 이연주 시집을 아껴 읽다가 문득, ‘어느 곳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는’ 것들의 가깝고도 먼 소곤거림을 듣는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에/소리 없이 부서지는/가랑잎 소리”(「가랑잎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마음결이라니…….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이 아리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에 익숙해진 내 눈과 귀가 모처럼 호강을 한다. “우는 아이 등에 업고/…/맨발로 절뚝거리며 돌다리를 건넜”(「시집살이」)을 이연주 시인의 生 앞에서 잠시 숙연해지다가 나는 또 문득,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연민으로 가득 찬 그녀의 결 고운 시집으로 인해 잠시나마 내가 행복했듯, 많은 독자들도 이 행복을 함께 누려보시기를 바란다.
―고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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