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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시집 <어느 곳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는> 해설] 일상의 뜰에서 캐내는 순백의 결정체들_김종섭(시인/한국문협 부이사장)

김주완 2014. 5. 1. 22:19

 

해설

 

일상의 뜰에서 캐내는 순백의 결정체들

이연주 시인의 시세계

 

김종섭 시인한국문협 부이사장

 

 

 

1. 머리글

 

시란 시인 자신의 꿈과 현실이 배어 있는 자기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난해한 시가 아무리 감추고 비틀고 낯설게 장치한다 해도 찬찬히 읽어보면 그 시의 주인공인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더욱이 시가 주관적 문학임에랴.

이 시집의 저자 이연주 시인은 프로필에 소개한 대로 지명(知命)을 거쳐 이순(耳順)의 중반을 넘어선 나이다. 굳이 생()의 연륜을 말씀드리는 것은 이 시인의 시가 결코 감정의 유희에 빠져 있다거나, 소녀기의 보랏빛 로망에 싸여 공허한 언어의 관념에 젖어 있다거나, 현학적 미사여구에 도취되어 있다거나 하지 않은, 그 어떤 말이라도 새겨서 이해할 수 있는 이순(耳順)의 진의를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설익은 감정의 잔재이거나 공허한 낭만의 침전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연륜의 두께만큼 집적된 시인의 인생 여정이 담겨 있는 수기요, 자서전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리라.

2. 삶을 통해 터득한 세계관

 

시인이 직접 철물점을 경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시적 화자의 직업이 철물점과 관계된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을 통해 철물점의 풍경과 특성을 생생히 꿰뚫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시집에서 맨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을 보자.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뾰족한 날을 세우고

살 속에 깊이깊이 파고들

순간을 노리고 있다

 

날카롭게 소름 돋는 정적이

새벽안개처럼

우리 사이를 흐르고 있다

 

푸른 날들에 박힌

분홍의 못 아직 그대로인데

더는 들이고 싶지 않은데

자꾸 가까워지는 시퍼런 천공

어둠 속에서 다가오고 있다

―「전문

 

나는 이 작품들을 대하면서 적이 당혹했다. 늦게 입문하신 주부시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흔히들 여성시인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서정적 연애시나 낭만적 생활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시의 소재와 주제 그리고 표현기법을 가지고 있음에 놀란 것이다. 그만큼 이 시인의 사물시가 내가 기대했던 이상의 가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의 소재가 된 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게 장치되어 있다. 표면상으로는 물체와 물체, 즉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못의 기능과 역할을 드러낸 듯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존재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겠고, 좀 더 확대해본다면 긴 세월을 버텨온 부부의 운명적 상황을 그려내고 있음이 아닌지?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들은 매 연마다 발견되고 있으니, “살 속에 깊이깊이 파고들”, “날카롭게 소름 돋는 정적이 중략우리 사이를 흐르고”, “푸른 날들에 박힌/분홍의 못 아직 그대로인데등이 그것이다. ‘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시적 화자의 운명적 관계를 이렇게 객관적으로, 그러나 너무나 절실하게 그려낸다는 게 연륜이 쌓이지 않은 시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난 내공력이라 하겠다.

 

물때처럼 자욱이 안개가 밀려오는 새벽

삐비빅 무거운 셔터소리 울리면

눈 비비며 들어서는 잠이 덜 깬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

 

갑자기 흥분하는 철물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푸르른 몸을 떤다

쾅쾅 못 박고 싶은 망치

때려주는 만큼 깊이깊이 파고들고 싶은

못 옆에서

흩어지는 허섭스레기들 칭칭 동여매고 싶은

철사가 몸을 비틀고 있다

집어주기를, 쓰이기를

저마다 선택을 기다리며

부릅뜬 눈길

―「철물점의 새벽전문

 

철물점의 새벽또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으로 보인다. 차갑고 딱딱하고, 모나고 날카로운 각종의 철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마치 욕망의 존재마냥 개개의 선정성을 드러내게 한다. “삐비빅 무거운 셔터소리 울리면”, “갑자기 흥분하는 철물들/이 구석 저 구석에서 푸르르 몸을 떤다”, “쾅쾅 못 박고 싶은 망치/때려주는 만큼 파고들고 싶은/못 옆에서”, “칭칭 동여매고 싶은/철사가 몸을 비틀고 있다며 마침내는 저마다 선택을 기다리며 부릅뜬 눈길로 끝맺으며 우리 인간들의 욕망을 은근히 꼬집으며,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이 시인은 미미한 시적 오브제조차도 잘 조합하고 소화하여 시의 주제나 내용을 맛깔스럽게 만들어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그만큼 이 시인은 시적 감수성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배경지식이 넓고, 수사 능력이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덧붙여 시인은 꽤 성능 좋은 망원경과 현미경을 가지고 있어, 보통 사람들이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이나 물건들도 예리하게 포착하여 우리에게 재미난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연주의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시적 안목이 얼마나 넓으며, 또 얼마나 섬세한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숨은 바람이 잠들어 있다에서는 골프를 치는 행위에서 팽팽하게 긴장되는 남녀 간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음을, 특히나 남자의 바람기를 의심하는 여자의 질투심도 숨어 있음을 찾아낼 수 있겠다. 옥탑방은 흔히들 낭만적 공간으로 그려짐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공사 노동자의 절박한 삶을 파란 불꽃으로 형상화함이 돋보이고, 지하철에서는 단절된 현대인들의 소통부재를 꼬집고 있다. 무료급식소에서는 오늘날 화두가 되고 있는 노인들의 복지 문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이처럼 시인의 관심사와 호기심은 다양하게 투사되고 있다.

묵정밭 산딸기를 보고서는 잊힌 자가 버리고 간 어느 날의 흔적을 찾아내고, 돌밭을 보고서는 조상들의 넋이 머무는/깨어진 기왓장으로 돋은 파란 이끼에/꼬장꼬장 대쪽 같은 결기가 돎을 느끼기도 하고, 빗방울을 보고서는 비는 오래오래 내리달아야 방울이 된다/부서지기 직전의 짧은 순간/내리치는 번개 같이 잠깐 동안만/슬픈 방울이 된다고 깨닫기도 한다.

 

3. 자연의 창을 통해 본 적요의 세계

 

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우주 사이에 저절로 된 모든 존재나 상태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 인공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아름다움, 자연미야말로 누구나 선망하고 선호하는 미의 온전함이 아닐까?

더욱이 미를 추구하고 창작하는 예술가나 문학인들에게 자연은 작품의 원천이요, 모태인 동시에 결국은 귀의처요 종착지인 것이다. 시인들 역시 자연을 통해 나를 보고, 자연을 통해 세상을 보며 우주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교감하는 존재이다. 사람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마음조차도 자연에게서 치유받을 수 있고, 마침내는 그 적요의 세계에 편안히 안겨들게 되는 것이다.

무위자연이란 말이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첨단과학시대, 물질만능사회, 무한경쟁체제에서 자연의 힘은 그만큼 소중하고 위대한 것으로 인식된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하늘에 닿도록 기다려도

 

아무도 몰래

방울 같은 등을 내거는

나는 늘 혼자이다

―「가문비나무전문

 

흔히들 서경(敍景)과 서정(敍情)을 얘기할 때 어느 것이 주고, 어는 것이 종인가를 따질 때가 있다. 명나라 때 사진(謝榛:1495~1575)은 그의 사명시화(四溟詩話)에서 경물은 시의 매체요, 정감은 시의 배아다라고 말한 바가 있기도 하지만, 기실 서정과 서경은 수시로 혼재하여 감정 속의 경물’, ‘경물 속의 감정을 이루는 병렬구조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양자를 주종구조가 아닌 정경융합의 관계로 이해하면서 변화와 상상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서경은 서정의 최선인 동시에 담론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하겠다.

아무려나 이연주 시인의 작품은 단순히 자연의 묘사에만 머물지 않고, 서경 속에다 서정을 담아 시인 자신만의 색깔과 형상으로 아름다운 서정을 그려내고 있음이 돋보인다.

가문비나무에서 시적 화자는 그리운 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외로운 여인으로 그려내고 있다. 나무와 등을 내거는 사람, 즉 자연과 자아를 동일시하며 물아일체경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잠 깨면 아침이다에는 단풍든 가을에 철야불공을 드리러 갔던 시적 화자의 일상을 바람단풍이라는 자연물에 의탁하여 그려내고 있다. 이는 서정을 서경을 빌어 경물 속의 감정이 아닌 감정 속의 경물을 노래했다고 볼 수 있겠다. 서리꽃은 자연현상으로서의 의미와 흰 머리칼, 즉 인생의 연륜을 의미하는 중의법을 취하고 있는데, ‘정경융합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단아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 시는 4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반부 2연은 서경을 그려내고 있으며 후반부 2연은 서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기, , , 결의 한시 절구형태와 유사하다. 결구에 해당하는 마지막 4연의 한 세월 달려왔더니/나의 머리 위에도/녹을 줄 모르는/서리꽃이 피었어요라는 부분에 와서는 이순을 넘어선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아카시아 향 가득한 인촌리

안산 중턱은 아늑하다

세종대왕의 열여덟 왕자

우측에는 적자, 좌측에는 서자들

탯줄에서 이어져 나온 오백 년

눅눅한 서열이다

 

여태 말린 속눈물이

맑고 맑은 법고 소리에 닿을 때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떠나온

향유고래의 울음소리

안산 태실 골짜기로 퍼져

얼룩진 빛깔로 자라난

잡풀들 바람에 날리며 섰다

 

서진사의 법고 소리

적요한 빛깔을

온 세상에 흩뿌리고 있다

―「적요의 빛깔전문

 

동양에서 말하는 시의 어원을 ()()의 회의자로 해석하여 , 곧 부처님의 말씀이라 등식화하기도 한다. 시란 불교에서 정법을 설하는 말인, 법어(法語)에 다름 아닐 것이다. 미사여구의 현란한 수사를 버리고, 말의 진수를 찾아 간단 명료하면서도 압축 함의된 진언임에 틀림없다.

위에 인용한 불교적 시편들은, 한결같이 적적하고 고요한, 산문이나 불당의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속세적 삶의 고단함과 혼란스러움을 치유해주는 자비로움의 운기가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적요의 빛깔은 선사(先史) 내지 역사의 흐름을 씨줄로, 왕조의 태실과 산사의 법고소리를 날줄로 교직한 적요라는 비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표현의 기법이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혼용한, 공감각적 이미지로 그려내어 입체감을 더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 다른 시 사월 초파일은 시적 화자가 석가탄일을 맞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산사로 가기 전 단정히 머리 빗는 행위를 통해 석가세존의 탄신을 송축하는 법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무더운 초여름 날씨로 비유된 시적 자아의 혼탁한 심사를 천둥 번개소리소낙비로 표현된 번뇌의 세정(洗淨) 과정을 거쳐, 드디어 연등이 둥둥 떠오른다는 법열의 경지에 이름을 보여주며, 마침내는 빗을 갓 빠져나온 머리칼처럼/수만 헝클어짐들이 펴지는 소리로/툇마루 건너 마당 가지런하다며 불심으로 충만한 극락정토를 보여주고 있다.

 

진흙 뻘물 위

고요히 앉아 있는

고통을 안고도

의연히 하얀 이 드러내고 웃는

세속에 물들지 않고

아침이슬을 연잎에 받쳐 든

하얀 연꽃송이는

관세음 부처님

 

백련,

삶에 힘겨워 기우뚱대는 사람들에게

연대(蓮臺)는 공()이요

뿌리도 공()이요

세상의 모든 것이 공()이라

연꽃으로 세상을 밝히리라

무언의 말씀, 귓전에 울린다

―「연밭에서전문

 

흔히들 연꽃은 불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의 탄생을 알리려 연꽃이 핀다고 믿었고, 극락에서는 모든 신자가 연꽃 위에서 부처로 태어난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연꽃은 진흙물 속에 피면서도 물에 젖지 않고, 꽃과 열매가 동시에 피고 맺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연꽃의 의미를 알고 있는 시적 화자는,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이 공()이라/연꽃으로 세상을 밝히리라/무언의 말씀, 귓전에 울린다며 불자로서의 도리를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이밖에도 불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 여럿 보이는데, “흐르는 걸음마다/아련히 피어나는/부처님의 인연법을 말하는 시절 인연, “업을 지고 허덕이는 영혼의/깊은 잠을 깨우는 낭랑한 소리라는 석류, “울긋불긋 연등 옆에서 부처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싸리꽃을 노래한 산내음, “가을바람에 상처 난 노란 모과 연등처럼 환하다라는 이탈의 시간등이 그것으로 시적 자아는 매사를 자비로운 불심에 젖어 살고 있는 듯하다.

 

강둑에서 남자는 가오리연을 날렸다

떨쳐버리려는, 쇠심줄보다 질긴 인연을

연에 담아 얼레실 모두 풀어 하늘 높이 올렸다

유리 가루 먹인 연줄, 억지로 끊어서 띄워 보냈다

내쳐진 연 꼬리가 파르르 떨며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여인의 찬바람 감도는 모습처럼

시리게 파고드는 강바람 사이로

얼지 못한 겨울 강의 흐느낌 소리 들린다

겨울 철새 한 마리, 긴 목을 빼고

달아나는 연을 쫓아 날아오른다

―「연날리기 1전문

 

전문이 겨우 10행으로 되어 있지만 긴 감동의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연 날리던 유년의 추억과 더불어, 이루지 못한 소년기의 꿈과 아쉬웠던 청춘기의 동경과 사랑까지도 반추케 하는, 그런 울림을 주고 있다. 전반부의 하늘로 날아가는 연이라는 상승의 이미지에 대응한,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여인의 찬바람 감도는 사이로/얼지 못한 겨울강의 흐느낌 소리 들린다는 하강적 이미지는 이 시의 백미가 아닌가 한다.

아무려나 이는 이루지 못한 인연을 떠나보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드러내는 고요한 회상의 범주에 드는 서정이라 하겠다.

 

4. 자연의 빛, 그 찬란한 신기루

 

3부에 실린 작품도 제2부에 담긴 시들과 마찬가지로 그 제재를 자연에서 구한 것들로 엮어져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자연이라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자연의 구속과 제한, 그리고 자연의 변화와 혜택에 영향을 받고 있다. 시인을 비롯한 모든 예술인들의 창작품도 당연히 자연의 특성과 진면목이 작품 속에 녹아 있기 마련이다. 인공의 가식을 덮씌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자연의 순수한 서경을 담아내는 것, 이 또한 모든 시인들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이연주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는 을 노래한 것들이 상당수 보인다. 시를 읽어보면 절로 생명의 환희와 희망을 느끼게 되고, 우리 스스로 음울의 고소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꽃샘바람을 따라가면 어느덧 봄날이 와있고, 춥고 길었던 겨울의 때를 씻어내는 여인의 빨래작업은 자연물에도 전이되어 무거운 겉옷 벗은 매화나무 꽃망울하늘을 올려 보게한다. 특히 청보리밭은 그 표현에서 빌어 온 보조관념들인 고운 바람기푸른 바다봄비그리고 물 젖은 털강아지를 거쳐 머릿결을 빗기는 빗살에 이르는, 그 연상기법이 여간 빼어난 것이 아니다. ‘청보리의 시적형상화는 참으로 신선하다. ‘이라는 절기를 자연적 현상으로만 그리지 않고, 특정한 공간에 빼어 있는 역사성에다 화자의 감정을 이입하여 빚어내는 풍경의 실루엣은 오랫동안 나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고단한 물굽이 흘러온/재첩의 살점 같은/슬픔의 빛깔 녹아든 얼굴”(부분)이라는 봄비 오는 들길을 가면우리는 무엇을 만날까? 어린 시절 헤어진, ‘작은 들꽃같은 해맑은 얼굴하나……! 꽃에도 그늘이 있다의 첫머리에 봄이 달려왔다고 했는데 실은 봄이 달려온 것이 아니라 화자가 봄을 기다렸던 마음이 그렇게 간절하고 성급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남녀노소, 어느 누가 꽃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만 아무래도 성숙한 여인의 마음이 더욱 절실하리라. “한 세월 곱게 웃던/꽃에도 그늘이 있다라는 결연을 음미해보면 분명 시적 화자의 감정이 입혀져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겠고, 젊음을 떠나보낸 여인의 미련과 회한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겠다.

 

대숲에

장대비가 쏟아진다

 

어린 이파리 파르르 떨며

속엣 것 다 내어주고도

속죄하는 대나무들에게

장대비가 온종일 매질한다

 

칡넝쿨이 가시덩굴처럼

칭칭 밟고 물러설 때

대숲의 신음소리 끊일 줄 모르더니

너의 몸뚱이 시퍼렇게 멍들었구나

 

숲속 건너에서 불어오는 청정한 바람

아련한 노랫소리로 대숲을 다독인다

―「대숲전문

 

시적 자아의 자연에 대한 자상한 사랑과 섬세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단순한 서경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 아니라 의인법으로 표현된, 수사상에도 드러나고 있듯이 이 시는 화자가 서경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고자 하는 서정 세계가 바탕에 깔려 있다. 갖은 세파의 고초를 다 견뎌내면서 어린 것들을 키워내는, 모성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아련한 노랫소리로 대숲을 다독이는 청정한 바람으로 환치되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5. 혈연에 대한 모성의 무한 사랑

 

두루 아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는 근원적으로 모성회귀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짐승들의 수구초심(首丘初心)’, 새들의 귀소본능(歸巢本能)’, 물고기들의 회귀성(回歸性)’, 인간들의 모성회귀본능(母性回歸本能)등 동물적 존재의 고향의식은 다르지 않는, 기본적 본능임에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그것이 차별화되는 이유는 원초적 특징 이외에도 사고를 비롯한 본질적 특징과 문화라는 고차원적 특징을 가진 때문이 아닐까?

모든 생명체의 원천인 모태, 어머니야말로 우리 인간에게도 생존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문학에서도 고향의식, 모태회귀의 본능은 그 어떤 제재나 주제보다도 위대한 것으로 우선하며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문인들 작품에는 예외 없이 어머니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 시집의 저자 역시 많은 작품을 어머니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겨울도 오기 전에 불쑥 찾아온 첫눈

떠나지 못한 가을이 흩날린다

앞집 석류나무에 몇 개 남은 빨간 석류

머릿속이 어지러운지 담 넘어 떨어진다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엄마의 칠순 때 해드린 금반지

그 존재의 사랑이 부재가 되고난 후

내게로 왔는데

 

어느 곳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는

당신

 

소낙비가 그리운 날이다

옛집에 머무는

가을 끝자락이 저 혼자 구시렁대니

앞선 겨울이 뛰어오는 것이다

―「어느 곳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는전문

 

떠나고 안 계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30년 넘게 살았던 옛집을 찾았으나 어머니가 안 계신 고향집은 골목마저 어색하고,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이 스산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비록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모습이지만, 고향집 구석구석 어느 곳에나 어머니의 사랑이 남아 있는 곳이라 시적화자는 느끼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모성과 고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사향가(思鄕歌)이다.

이밖에도 어머니 겨울이 올라치면/뒤주마다 쌀을 가득 채우고/구공탄도 가득가득 (중략) 어머니의 부산했던 초겨울/늦게야 알았다/월동 준비인 것을”(월동 준비부분)이나, “어머니의 젖줄 같은 수액은/숲 사이로 젖어들어/하얀 눈물로 흐르는데/꽃술은 향기가 없구나/너의 한풀이던가”(자작나무부분), “내일은 머리 염색이라도 해드려야겠다고/생각만 하다가 지나쳤지/부풀다가 사라지는 비누거품인 양//별처럼 초롱초롱한 후회가/해 늦은 그믐밤까지 따라오고 있다비누거품, “어머니의 웃는 얼굴에/소리 없이 부서지는/가랑잎 소리라는 가랑잎 소리, “아침 산책 가신다면서/무지개 열차 타고 아버지한테 가시었다/십여 년 갖고 다니던 구겨진 꿈속의 차표만 가지고”(기차표부분)에 이르기까지 시적 화자의 어머니 생각은 다양하게 표출되어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화자의 평범한 삶 속에서, 또는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물을 통해서, 또는 어머니의 사소한 유품을 보면서도 곡진한 모성애에 젖게 된다. 그만큼 인생에 있어서 간절한 것, 본성적인 것, 위대한 것이 모성애임을 웅변해주고 있음일 터이다.

그녀는 시집을 갔다

이른 나이에 등 떠밀려

돌밭길 너머로 시집을 갔다

 

넘어지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당부를 꺼내 보고 들으며

시집살이 삼 년 동안

들일 집일 모두 해냈다

 

우는 아이 등에 업고

첫 친정 가던 날

바짓가랑이 둥둥 걷고

맨발로 절뚝거리며 돌다리를 건넜다

 

돌아보는 돌밭길, 멀리까지 돌도 많았다

―「시집살이전문

 

시적 화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60~70년대에 젊은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삶의 조건이었겠지만, 이 시의 주인공 역시도 우는 아이 등에 업고/첫 친정 가던 날/바짓가랑이 둥둥 걷고/맨발로 절뚝거리며 돌다리를 건넜다라며 인고의 시집살이를 고백하고 있다. 또한, 부부애를 노래한 작품도 있다. 철길은 부부 사이를 철로의 평행선에다 비유하며 가정의 화평은 선로의 버팀목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문득 누군가 말했던,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연상된다. 철길의 연작으로 보이는 가을 햇살역시 부부의 삶을 여행으로 그려내며, 기차를 타고 함께 달려온 날들이 어느덧 숨어 있던 가을 햇살은/선로의 평행선을 붉게 비추고 있다며 황혼녘을 바라보는 부부의 삶을 가을 햇살에 비유하고 있다.

 

왜관역 대합실

시계만 자꾸 쳐다보며

초조하게 기다리는 어머니

군에 간 아들 첫 휴가 온다는 소식에

가슴은 두방망이질 하는데

느림보 기차는 오지 않는다

지연이라는 문자가 전광판을 스쳐간다

 

벽시계 무거운 분침이 반 바퀴나 돌고

늦게야 들어오는 기차의 허리

할미꽃 같이 휘어져 꼬리가 길다

쏟아지는 사람들 사이로

먼발치에서 새카만 군인

배낭을 어깨에 메고 뛰어온다

어무이요……

우리 아들 맞나, 얼싸안으며

아들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고생 많이 했제

소리가 나오다 말고 목에 걸린다

 

허리를 편 기차가 슬금슬금

기적소리를 울린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대합실이

휑하다

―「왜관역전문

위의 시는 혈육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인데, 군 입대 후 첫 휴가 오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초조한 심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외에도 손주에 대한 할머니의 무한 사랑을 읊은 미나 리는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 미나라는 외손녀를 예쁜 개나리에 비유하여 동심으로 읊은 시이고, 파란 눈 속의 별역시 같은 외손녀로 태어난 아기를 계절의 변환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딸내미를 꼭 닮은 아이/삶의 첫발을 꽃바람 타고 아이는 태어났다라고. ‘파란 눈 속의 별이란 시제 자체가 너무나 순수하고 예뻐, 시적 상징미를 잘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시의 의미와 무게감이 달라 보임을 가끔 보게 된다.

 

6. 끝맺으며

 

오늘날 범람하는 시들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오히려 서정의 갈증과 허기를 느끼는 것은, 읽는 이의 가슴으로 젖어드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지나친 기교주의, 지나친 형식주의, 지나친 상업주의에 빠져 내용도 없고 감동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가식의 시, 배설의 시, 허영의 시들이 독자로 하여금 시를 외면하게 하고, 배척하게 만들고 있지나 않는지? 이러한 때 진솔하고 순수한 무공해의 시를 대하게 되면 그 기쁨은 배가되리라. 이연주의 시를 통하여 모처럼 나는 그런 희열을 맛보았다.

이연주 시인의 시는 이상과 현실, 서경과 서정, 내용과 형식을 적절하게 조율하여 연주하는, 사랑의 세레나데이거나, 고된 삶의 엘레지이거나, 경외로운 자연의 교향악이다. 그의 시심은, 때로는 대자대비한 불심으로, 때로는 무한한 모성애로 가족과 이웃을 어루만져 보듬으며, 나아가 독자들의 고독하고, 상처받은 영혼까지도 위로해준다.

앞으로 연륜에 따른 소재나 주제의 다양성과 시력(詩歷)에 따른 표현과 기교의 세련미를 감안한다면 이 시인의 시세계 지평은 더욱 확장되리라 믿으며, 끊임없는 열성으로 이 시인만의 언재(言材)로써 멋진 시의 궁전을 건조해 가리라 확신한다. 더불어 더욱 진전된 두 번째 시집을 기대해본다.

끝으로 좋은 시집의 출간을, 이 시인을 주목하는 모든 독자들과 함께 축하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