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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제2시집 <소금을 꾸러 갔다> 해설> 그대, 살아 있는 한 살려고 애써야 한다_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김주완 2014. 10. 14. 22:12

 

그대, 살아 있는 한 살려고 애써야 한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서포 김만중(16371692)은 수필집이자 사회평론집인 ?서포만필?에서 일종의 시론을 전개하였다.

 

사람의 마음이 입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 말이고 말에 가락이 붙여진 것이 시가와 문장과 부()이다. (중략) 지금 우리나라의 시와 문장이란 고유한 언어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흉내내어 쓴 것이다. 설사 제법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무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주고받는 말이 저속하다 하여도 그 진가를 따진다면 사대부들이 중국의 시부(詩賦)를 흉내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

 

김만중은 시에 가락이 깃들어 있어야 함을 강조했고, 모국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서민들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어의 구사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한문은 타국지언이므로 한문으로 시를 짓는다면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일찍이 국민문학론을 주장했다. 300년 전에 김만중은 ?사씨남정기??구운몽? 같은 한글 소설을 썼기에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포만필?은 한문으로 쓴 책이어서 이런 주장도 한문으로 되어 있기는 했지만 당시의 양반들에게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글쓰기를 하지 말라고 깨우쳐주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과거제가 실시되고 있었고, 한글은 언문이라고 천대받던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용기였다. 그 무렵 우리나라 사대부 계급은 소동파를 흉내내지 않으면 행세를 못할 지경으로 중국의 시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 급급했다.

지금 우리나라 시단에 퍼져 있는 문제점 중 하나가 시인과 독자 사이의 소통 불능이 아닐까? 상당수의 시가 지나치게 난해하고 길고 산문적이다. , 운율을 완전히 버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법 파괴에 이국취미에 주제 부재가 유행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유명 출판사에서 나오는 시집을 사서 읽고 거듭 실망하다가 시집을 안 사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많은 독자가 내게 들려준다. 시집 독후감조의 서평 쓰기 숙제를 내주면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조차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다 숙제를 하지 구매하여 소장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예전에는 재판3판 시집을 찍었던 고명한 시인들의 시집도 지금은 초판에서 멈춰버린다고 출판 관계자가 들려준다. 이것이 오로지 활자문화의 시대가 가고 영상문화의 시대에 돌입했기에 초래된 현상일까? 시인 자신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김인숙 시인의 생애 두 번째 시집인 ?푸른 불꽃으로 피어올라?의 원고뭉치를 받고 읽어 나갔다. 나이 마흔에 등단하였고 이제 두 번째 시집을 묶어내려고 하니 그다지 늦깎이라고는 할 수 없다. 출발선상을 막 떠나 잘 달리고 있는 시인에게 덕담을 해줘야 할지 꾸중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를 몇 편 감상해본다.

 

오월 초입

 

묵은 깍지를 떨궈 내지 못한

무궁화 가지에서

뾰족한 햇것들이 마구 밀고 올라옵니다

 

푸석하게 변색된 씨앗주머니

모진 겨울 지난 묵은 깍지들

가지 끝에서 생의 끝자락을 힘주어 붙들고 있습니다

차마 떠나지 못해 악다물고 있는

그 미련, 참 큽니다

 

()과 사()의 질긴 동행입니다

―「깍지전문

 

무궁화나무 가지 하나에서도 묵은 깍지는 나무에 붙어 있으려 하고, “뾰족한 햇것들은 마구 가지를 밀고 올라가 제 생명력을 구가하고 싶어한다. 묵은 깍지들이 가지 끝에서 생의 끝자락을 힘주어 붙들고 있는 광경을 유심히 본 시인은 그 미련생과 사의 질긴 동행으로 인식하고 있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거둬들이는 사람들도 있고 돌고래가 집단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생명체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신의 생명 유지에 애착을 보인다. 우리는 병이 있으면 고치려고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수술을 받는다. 그런데 식물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송구영신을 한다. 묵은 잎을 떨어뜨려 거름을 삼고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고……. 생명체의 생명현상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형상화를 위한 노력이 첫 시집에서 전개되지 않을까, 예감케 하는 시가 바로 깍지.

 

봄에는 우후죽순이 올라오지

올망졸망 새끼 거느린

덩치 큰 범처럼

울부짖는 저 모습

 

작은 물고기들은 무리 지어서

크게 보인다고 하지

약한 날벌레는 덩어리로 뭉쳐

힘을 모으지

―「대숲부분

 

대나무는 외따로 서 있지 않고 숲을 이룬다. “속이 비었으니 약할 수밖에없지만 무리를 지어 서로에게 기대고 산다. 흡사 작은 물고기나 약한 날벌레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큰 물고기로 비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사슴이나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도 맹수들과 맞서 싸울 수는 없다. 그래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수적 우세를 보여주고, 그중 누가 죽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세상에서 집성촌 일가붙이가 되고/ 대숲 앞에 대숲 같은/ 마을이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우리 조상은 종씨끼리 벗하여 사는 편이 편리했기에 유유상종, 집성촌을 이뤄 살았던 것이다. 이어지는 시는 시인의 추억담이다.

 

아침에 아이는

은근히 미소 머금는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바가지를 안은 채 키를 덮어쓰고

옆집에 소금을 꾸러 갔다

하루 종일 아이의 볼이

수박 속살처럼 붉어져 있었다

―「소금후반부

 

소를 소복이 넣은 둥근 송편

살짝 들어 하늘을 비추니

영락없는 추석달이다,

올해도 달덩이만큼 풍년이겠다

혼기 찬 셋째 언니, 시집 잘 가겠다

―「추석달후반부

 

내가 어렸을 때, 요에다 쉬를 한 옆집의 아이가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왔다가 할머니한테 매도 맞고 흠씬 꾸중을 듣고 가는 광경을 수시로 보았다. 시인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추석 전날 송편 빚기도 그렇다. “송편 모양내기에 경쟁이 붙은/ 딸부자 집, 우리 집이니 그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선연히 펼쳐진다. (지금은 추석 때 송편을 직접 빚는 집이 거의 없고 가게에서 사서 쓴다.) 시인의 추억담은 회상」 「콩깍지」 「똬리」 「아궁이」 「어머니 냄새」 「집에 들다」 「대못」 「벌초」 「비손」 「간고등어등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유년기와 성장기에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시의 소재로 삼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것들,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보기 어렵게 된 광경을 시인이 하나 둘 보여줌으로써 농경문화 시대 우리 민족이 지켜낸 전통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그것의 상실을 애달파한다.

 

쇠죽솥에 마른 콩대를 삶고 있습니다

작두에 잘게 썰려진 콩대입니다

들썩들썩 솥뚜껑을 밀면서 김이 솟아오릅니다

쪼그라져 딱딱해진 몸이 많이 커졌나 봅니다

퉁퉁 불은 콩잎에서 누런 물이 배어나옵니다

부황 든 풀잎처럼 부들부들해졌습니다

―「콩깍지1

 

시인은 쇠죽솥에 마른 콩대를 삶던 날들을 회상하는데, 그것의 단초가 되는 것은 냄새다. 소가 먹는 콩대 마디마디로 피어오르는/ 먼 들판의 바로 그 냄새”, “구수하고 순한 누렁빛 냄새를 지금껏 잊지 못하고 있다. 마른 콩에서는 구수한 메주콩 냄새, 된장 냄새가 나는가 보다. 어머니도 치마에서 언제나 내풍기던/ 시큼한 개숫물 냄새로 기억한다. 그런데 정겨운 냄새, 구수한 냄새와 이별해야 할 시간이 온다. “나라에서 알려준 이앙의 기술처럼/ 자식들/ 중학교를 마치면/ 먼 도시로 보낸다”(똬리). 이윽고 부모와 영영 헤어지는 날도 오고 시인도 어느덧 어머니가 된다.

 

둥그렇게 반달 같은

저 두 집에 어머니 아버지 계신다

―「벌초첫 연

 

아이들이 옥수숫대처럼 쑥쑥 자라는 지금

나도 이제 손을 모아 비는 일이 잦아진다

이미 어미는 되었고

느리지 않게 할매가 되어 간다

―「비손끝 연

 

이처럼 김인숙 시인의 시는 일단 쉽다. 하지만 생의 비의가 쓸쓸히 흐르고 있고 인생살이의 희로애락이 교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대가족이 한 집에서 살더라도 언젠가는 이별하고 사별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숫돌을 쓰지 않는 시대/ 사람들은 무딘 칼을 미련 없이 버리고/ 바쁘게 흐르는 시류 따라/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아버지의 숫돌).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고 세상의 변화가 무쌍하다고 느낀 중국인들은 원래 과장벽이 심한데,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상전벽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제1부 시편의 기본 정조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쓸쓸함이다.

2부의 시도 기본 정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꽤 긴 시가 제2부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사랑하다가

모가지 뚝 부러져

떨어지는 동백꽃의 순한 슬픔, 거기 없, ,

 

망각만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어

가슴에서 조금씩 밀려나가는 기억의 썰물

―「아름다운 슬픔끝 부분

 

시인은 말한다, 망각만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우리는 괴롭거나 슬픈 일도 망각함으로써 고통의 늪에 빠지지 않게 되지만, 즐겁고 흐뭇했던 일도 망각이 안 되면 살아가기가 힘들다. 과거는 무조건 좋았고 현재는 무조건 힘들다는 과거지향의식은 사실상 바람직하지 않다. 희로애락 그 모든 기억들이 뇌리에서 자꾸 밀려나야지 우리는 새롭게 또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시인의 시간의식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시가 있다.

 

초침은 초조하게

분침은 분주하게

시침은 시들하게

남남이 바투 이어져 쳇바퀴처럼 벽을 핥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씩의 시곗바늘이 되어 돌고 돌았다

둥근 시계 속으로 저마다의 하루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시계의 방부분

 

우리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특히 사건 사고는 우연성의 법칙에 따르지만 시간은 순간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흘러간다. 시계처럼 째깍째깍 살아있는 한, 생은 쉬지 않고 직여야 한다/ 야간 행군까지 해야 한다/ 가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창백한 얼굴의/ 꽃은 씨방을 부풀려 가장 화려했던 날들을 시간으로 저장한다같은 구절은 시간의 무상함과 영원함, 생명의 유한함과 일회성을 동시에 말해준다. “시간의 방에는 표정이 없다는 말은 시간의 비정함을 뜻하는 것이다. 시간은 정확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그에 따라 우리는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우주의 시간은 영원회귀하겠지만 생명의 시간은 죽음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뭇 생명체의 유한성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꽃과 열매의 거리」 「겨울비 내리는 날」 「처음 가는 길」 「바람의 길」 「겨울 원행」 「잿간등을 통해 전개된다. “잘 마른 잠자리 날개처럼/ 건들면 바스러져 분가루로 날릴 듯한/ 반구형의 지붕 같은 미라,/ 허공을 벗어나 땅에 안착한/ 가파른 한 생이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죽은 거미를 쓸어내며에서와 같이 생명체에 있어 가장 확실한 진리, 그것은 죽음이다. 그런데 죽음이 진리라고 해서 우리는 낙심하고 허무감에 사로잡혀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유한자이기 때문에 시간을 금쪽같이 아끼며, 사랑하는 것들을 아끼고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 아픔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데

사랑한다고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아픔을 나눌 수 없어 더 아픈 것이지

 

사랑이란 그런 것이지

사랑이란 것,

그런 것이지

―「대신 아파 줄 수 없어 더 아프다끝 부분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이 말이 아닐까? 유한자이면서도 단독자인 인간은 타인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잠 못 자고 눈물 흘려 줄 수는 있어도아픔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외로운 단독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돕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 “어깨와 어깨를 서로 기대야/ 엇비슷이 서는 사람 ,/ 두 개의 다리로 걸어가듯/ 양 바퀴로 살아가는데/ 홀로 피어 더 고운 꽃도 있다”(바퀴)는 시행을 음미해보라. 물론 서커스단의 외발자전거도 저 혼자 잘만 달린다. 홀로 피어 더 고운 꽃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런 것들보다는 외바퀴와 양 바퀴,/ 풀고 묶어서/ 홀로 가는 흐름과 함께 가는 흐름이/ 하나의 강에서 눈덩이처럼 녹으면서 구르는 경지를 더욱 좋게 본다. 외로우니까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또한 무위도식해서는 안 된다. 남은 생이 남아본들 얼마나 남았겠는가. 우리 모두 생에의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식물을 보라. 그것들은 태풍도 북풍한설도 다 견뎌내며 제자리에 버티고 있지 않은가. 깍지에서 보여주었던 주제가 제3부에서도 다시 나온다.

 

다 흘러내리고 뼈대만 남은 고택처럼

다 떠나고 홀로 옛집을 지키는 노인처럼

뿌리만은 단단히 생을 거머쥐고 있다

 

(중략)

 

유빙으로 떠돌다가

반구를 넘어 가버리는 겨울,

아쉽지만

벗겨진 각질을 밀고

차오르는 새살처럼

이제 깨금발을 들고 새싹이 오를 것이다

―「겨울 갈대부분

 

이와 같이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다. 아프면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는 데 온힘을 쏟기도 한다. 다 살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산길을 가다가 나무의 뿌리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나무는 지상으로 올라와 사람의 울퉁불퉁한 심줄을 방불케 한다. 등산객들의 발길에 빤질빤질해진 채로 뿌리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가지는 가지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잎은 잎대로 소임을 다해야 식물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세상에서의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좌판엔

촌부의 억센 손에 베어져 나와 숨이 죽는 어린 부추

오글거리는 아이들 손길 기다리는 보송한 병아리

한 무더기씩 놓인 버섯, 시금치, 호박, 오이

할머니가 만지작거리며 쌓아 놓은 무말랭이

손수 밀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놓은 손칼국수

따끈한 국물이 일품인 어묵, 속이 멍든 호떡

가끔 커피 손수레가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지나간다

―「난전2

 

칠일장이 서는 어느 마을의 시장 난전에 가보면 이와 같이 생기가 넘친다고 한다. 삶은 치열하고 엄숙한 법이다.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은 그 자체가 성스럽기까지 하다. 욕심만 과하지 않다면 사람들이 각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거룩하다. 난전의 풍경을 시인은 사투리가 넘치고, 덤과 떨이가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햇살 따가운 오늘”, “엄마 손에 끌려 통통 걸어가는/ 여덟 살 아이가 햇살처럼 반짝인다고 묘사한다.

4부는 그대로, 생명예찬이다. 수많은 꽃과 풀이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고 생명력을 구가하는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하얗게 입술 꼭 다물고 있는 개망초 밭에 가서 시인은 울어요,/ 소리 내어 울어 버려요/ 아무런 눈치 볼 것도 없어요라고 꽃들에게 말을 건넨다. 시인은 수동적인 삶을 살기를 거부한다.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을 소망하고 있기에 마지막 정열을 쏟아 붓고/ 육신마저/ 온전히 바쳐 버리는/ 숫사마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인의 이런 생각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는 시가 숯불 푸른 불꽃이다.

 

붉디붉은 불꽃으로 피어

제 몸 다 타고도

숯으로 남아 검은 가슴에 불을 품은 삶

 

언제쯤

파란 불꽃이 파르르 피어올라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부드러운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이

상한 마음을 쓰다듬으면

어둠 쩍 갈라지고 난분분한 꽃불이 쏟아질 거라

―「숯불 푸른 불꽃1, 2

 

시인의 나날이 만사태평에 무사안일일 수는 없다. 적어도 영혼은 숯불의 푸른 불꽃처럼 파르르 피어올라야 한다. 시인은 흡사 천수천안관세음보살처럼 부드러운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상한 마음을 쓰다듬으면/ 어둠 쩍 갈라지고 난분분한 꽃불이 쏟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몸이 거주하는 삶의 공간은 호수와 같을지라도 영혼은 격류 속으로 휘말려들어야 한다.

 

숯처럼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문득 피어나

세상을 녹여줄 작은 불꽃 하나

겨울이면 간절히 가지고 싶어진다

 

끝나지 않는 어둠의 계절, 모질게 갇힌 날들, 힘들면 눈을 감는 사람을 위해

 

가슴에 숨어 있는 작은 불씨 살아나면, 이 겨울에

그 불씨 꺼트리지 말고 활활 태워야지

얼어붙은 가지에 잎이 돋아

화르르 삼동을 나는 동백꽃으로 만발할 것이니

 

숯불 푸른 불꽃 사륵사륵 살아나는 밤

맨발로 눈길 헤쳐 나서는 사람

―「숯불 푸른 불꽃36

 

정신의 치열함을 감지케 되는 뜨거운 시가 아닐 수 없다. 김인숙 시인이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될 각오로만 시를 쓰면 이 땅의 소중한 시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무였다가 숯이었다가 불꽃이 되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김인숙의 시에서는 어려운 시어나 난해한 표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가 쉽다고 하여 내용마저도 가볍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엄숙하다. 하지만 시가 길어지는 경우 초점을 잃기도 하는데 이 점은 앞으로 유의했으면 좋겠다. 또 쉽게 씌어진 시가 간간이 눈에 뜨인다. 쉽게 씌어진 시는 쉽게 잊혀질 것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길이와 깊이에 상관없이 여운이 남지 않는 시는 결국 독자의 뇌리에서 금방 사라져버릴 것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또 한 권의 시집을 내려고 하는 시인에게 해설자는 주로 덕담을 해주는 것으로 해설의 갈피를 잡아 지금까지 주요 시편의 값어치를 살펴보았다. 아직은 치열함이 부족하니, 아무쪼록 배전의 각오로 시의 사래 긴 밭을 갈아나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