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여성신문
승인 2014.09.29 14:05:28
수습
■ 지금은 시를 읽을 시간
기습한파가 몰아닥친 초겨울, 독거노인 배씨 할머니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이장이 찾아가 삐걱거리는 방문을 열었다. 냉기 도는 방 아랫목에 잠든 듯이 누워 있는 할머니의 숨결, 꺼져 있었다. 배꽃처럼 하얀 얼굴 참 편안했다. 적멸의 고요를 깨면서 앰뷸런스가 다녀가고 정오를 지나서 담당공무원과 사회복지사가 나왔다. 이장의 말을 건성으로 듣더니 기초생활수급자 대장에서 할머니의 이름을 삭제했다. 붉은 줄만 남았다.
배씨 할머니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 후 아무도 없었다. 세상은 변함없이 편안했다. 한 생이 수습되는 장엄한 의식은 삭제가 남긴 붉은 줄 하나가 전부였다.
김인숙·(1970~ ) 경북 고령 출생. 2009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소금을 꾸러 갔다』 등이 있음.
*붉은 줄 하나만 남기고 가는 생(生)이라니! 그리고 그것을 ‘삭제’라고 말해야 하는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우리는 누구나 ‘배씨 할머니’처럼 무관심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수습하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붉은 줄에 갇히는 건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해진 시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무거워진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배꽃처럼 하얀 얼굴 참 편안했다”는 시인의 진술이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시인의 연민에 자꾸 눈길이 간다.
—고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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