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11)>
땅
오늘날 땅은 부의 상징이고 척도이다. 땅을 많이 가진 자는 부자이고 땅이 없는 자는 빈자이다. 땅은 곧 화폐로 환산되고 교환된다. 뿐만 아니라 땅은 그 총량에 있어서 일정하게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많이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 부자들이 땅에 투자하는 이유나 투기꾼들이 땅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식민지 시대의 열강이 식민지 쟁탈을 위해 전 세계를 누볐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땅의 가치는 면적과 구역과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이들 삼자의 조건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문전옥답과 자갈밭이 구분된다. 금싸라기 땅과 허섭스레기 땅으로 나누어진다. 매장된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땅의 가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단위 면적당 생산성에 따라서 가치가 다르며 개발가능성이나 발전가능성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요컨대 용도성과 현금교환성 그리고 재산성에 관건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땅은 가장 확실한 재테크의 수단이며 대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땅의 본성은 이러한 소유개념에 있지 않다. 땅은 말없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사람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혈안이 된다. 땅은 누가 자기를 소유하든지 간에, 자기를 어떤 용도로 쓰든지 간에 그저 무심하게 거기 그 자리에 다만 있다. 땅은 주인을 선택하지 않고 용처를 결정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땅은 여성적이라고 본다. 동양학적으로 보면 땅은 양이 아니라 음이다. 땅은 해와 동격이 아니라 달과 동격이 된다.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양과 음이라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나온 구분이다. 서양에서도 땅을 모성과 생산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지는 어머니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그의 품에서 키워내는 것이 모성이다. 지상의 모든 것들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 땅은 세상 만물의 근원이다.
흔히들 땅은 정직하다고 한다. 씨앗을 심지 않은 땅에서는 싹이 돋을 수 없고 심은 땅에서는 반드시 싹이 나온다. 뿌린 씨앗이 모두 발아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어쨌든 싹이 돋아나는 것은 분명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땅은 조작하지 않는다. 땅에 솟은 정성만큼 결실이 나온다. 농부의 땀과 수확은 정비례 관계에 있다. 여기에 요령이나 예외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땅 위의 것들은 부정직할 수가 있다. 날림공사로 세워진 다리는 붕괴할 수 있고 화려하고 기품 있게 포장된 명품 가방도 짝퉁일 수 있다. 땅에는 짝퉁이 없다. 땅은 그 자신 어떤 욕심도 가지지를 않기에 정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설독서회 이채윤 시인의 다음 시는 땅의 강인한 흡인력과 포용력을 형상화 하고 있다. 땅은 안식이며 수용이며 포용이다. 떠 있던 것들이 땅으로 내려올 때는 그러나 기절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때의 기절은 시인의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 시적 표현이다.
하늘에 매달려 있기 심심해서
땅으로 내려왔어
밤에만 나타나는 것 너무 무서워서
땅으로 내려왔어
낮에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
땅으로 내려왔어
땅에 떨어지면서 기절했어
그래서 난
샛노랗게 질려버린
개 . 나 . 리 .
― 이채윤, <별> 전문
시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별들이 개나리가 되었다고 한다. 별과 개나리는 유사성을 가진다. 우선 개나리꽃과 별의 모양이 비슷하다. 은하수에 별이 자욱이 흐르는 것이나 울타리에 개나리꽃이 소복하게 피어있는 것도 유사하다. 별과 개나리꽃의 색깔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빛을 낸다는 공통성이 있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포착한 것이다. 그렇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들이 개나리꽃이 되었다는 것은 충분한 시적 보편성을 가진다. 개나리꽃뿐만이 아니다. 별꽃이나 코스모스, 안개꽃이나 이팝나무꽃까지도 별이나 별의 무리와 닮아 있다. 반짝이는 한에 있어서 지상의 모든 꽃은 곧 별들이고 피어나 떠오르는 한에 있어서 하늘의 모든 별은 곧 꽃들이 된다. 별과 꽃을 치환한 이채윤 시인의 통찰력은 탁월하다.
별들은 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왔을까? 땅의 재산성이나 경제성을 보고 내려온 것일까? 아닐 것이다. 땅의 모성 때문에 별들은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하늘에 매달려 있기 심심해서”, “밤에만 나타나는 것 너무 무서워서”, “낮에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가/너무 힘들어서” 별들은 “땅으로 내려왔”다고 시인은 말한다. 어머니의 품은 안락하고 안온하다. 거기서는 아무 것도 무섭지 않고 힘들지도 않다. 더구나 심심하지도 않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심심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거기는 다만 평화가 있을 뿐이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와야 편해진다. 떨어지는 어지러움과 낮은 곳에 부딪치는 충격으로 잠깐 동안은 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면 꽃이 된다. 본래의 모습인 미소를 다시 찾게 된다.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서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죽은 삶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생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모성을 찾아 되돌아오는 것은 별들만이 아니다. 귀농하는 사람이나 귀향하는 사람은 모두 모성을 찾아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차갑고 힘들고 무서운 곳을 벗어 나와 지친 영혼을 안식할 수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삶을 꽃으로 피우기 위해 처음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그들이 피우는 꽃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그 꽃들은 모두 아름답고 향기가 진할 것이다. 평온과 행복에 기절하여 그들은 땅의 품에서 머물 것이다. 하늘을 끌어와 땅에 묻은 그들의 삶은 별꽃이 될 것이다.
<약력>
칠곡 왜관 출생
왜관초등(47회) / 순심중(17회)
시인(구상 선생 추천으로 1984『현대시학』등단)
철학박사 / 대구한의대 교수(현)
구상문학관 시창작교실 지도강사(현)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지도교수(현)
대한철학회장 / 한국동서철학회장/새한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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