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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8] 신발-박경한 시인[칠곡인터넷뉴스]

김주완 2008. 9. 6. 14:12

2008-09-06 오전 9:16:36 입력 뉴스 > 문화&영화소개

‘신 발’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8)>

 

 

 

신  발

 

 


타이어 전문매장에서는 <타이어 신발보다 싸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처음엔 낯설어 보이던 이 슬로건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고 이해도 간다. 타이어 값이 싼 것이 아니라 신발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발은 신발이 아니라 부의 상징이다. 신발이 날로 고급화 되고 있으므로서이다. 깔창 하나가 40만 원대에 이르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약과에 불과하다. 초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나 사업가, 슈퍼리치(100억대 자산가)들이 찾는 소위 울트라 명품은 가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60만 원짜리 운동화, 123만 원짜리 힐, 157만 원짜리 샌들, 1,000만 원짜리 구두도 있다고 한다. 중산층이나 서민들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다.


신발은 본래 발을 보호하는 도구이다. 인류 최초의 조상인 원시인들은 맨발로 걸었을 것이다. 짐승처럼 발바닥 껍질이 두껍고 딱딱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나 나뭇조각 혹은 가시에 베이고 찔려 상처가 나서 곪고 썩고 했을 수 있다. 그래서 부드러운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감발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한 감발이 신발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선사시대가 끝나고 역사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오랫동안 신발의 진화 속도는 미미했다.


한민족의 경우는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짚신을 신었다. 먼 길을 떠날 때는 짚신을 몇 죽씩이나 어깨에 걸치고 나서서 헤지면 갈아 신으면서 걸어서 갔다. 물론 양반이나 부자들은 종이신이나 가죽신을 신었지만 백성들은 짚신이 고작이었다.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결이 더 고운 꽃미투리나 분미투리를 신었다. 짚신이나 미투리는 어느 정도 발을 보호할 수 있었겠지만 물이 스며들고 먼지가 덕지덕지 쌓이는 결함이 있었을 것이다. 한겨울에는 짚신 위에 천으로 감발을 하여야만 동상을 면할 수 있었다. 나막신은 물이 새는 일이야 없었겠지만 짚신만큼 부드럽지 않았을 것이며 겨울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왔을 것이다.


개화가 되면서 고무신으로 시작하여 운동화, 작업화, 구두, 특수화 등으로 신발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신발의 종류 또한 다양해졌다. 축구화, 농구화, 스키화, 육상화, 조깅화, 골프화, 볼링화 그리고 등산화나 실내화 등 그 이름을 다 열거하기도 힘이 든다. 용도별 신발에도 고급화 명품화가 이루어져 있다. 신발로서 부를 과시하고 신발 때문에 부 앞에서 기가 죽는다.


발의 보호라는 신발의 용도성이 이제 부의 상징인 사치성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발이든 신발 그 자체로 보면 이력과 흔적이 본래성이라 할 수 있다. 신발은 인간의 체중 전체를 지탱하면서 몸을 받쳐주는 위치에 있고 그러한 역할을 한다. 걸어온 인생행로의 이력이 신발에 그대로 잔존한다. 카펫 위를 지나온 신발은 먼지가 거의 묻지 않을 것이고 포장도로를 걸어온 신발은 먼지가 조금만 묻어있을 것이며 흙탕길을 걸어온 신발은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발의 본래성은 개별적 역사성이다.


한국문인협회 칠곡지부 박경한 시인(순심고교 교사)은 신발의 역사성과 고단한 삶의 치열성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친구여, 먼 길 걸어왔구나

옆구리가 헤진 운동화 한 켤레

느티나무 잎이 식당 창문을 두드리는데

노을 한 자락 바람에 펄럭이는데

육신처럼 끌고 다닌 신발 한 켤레

군데군데 세월에 할퀸 자국,

팍팍한 시골의 삽질 노동과

공사판 등짐으로 등골이 휘었겠구나

거덜 난 살림 속 너의 노동은

깨진 독에 물 붓기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혔겠구나

목련꽃 피고 지는 사연 헤아릴 새도 없이

취한 듯 그윽한 밤꽃 향 맡을 새도 없이

세월은 너의 뼈를 딱딱하게 만들었구나

세월은 너의 손가락을 굵게 만들었구나

복사꽃 피는 날

지상의 헤진 신발 가지런히 벗어놓고

하늘의 별 돋을 때까지

아직은 내일을 이야기 하자

살아있으므로 구원을 이야기 하자


         ― 박경한, <친구의 신발> 전문

           (박경한,『살구꽃 편지』, 부산:도서출판 전망, 2008, 20~21쪽.)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을 연상하게 하는 이 시는 신발의 본래성을 형상화 하고 있다. 신발은 ‘신음’에 그 본질이 있다.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조차 못할 때 신발은 신발로서의 참된 것이다. 명품인가 아닌가의 이전에 발의 보호와 안락에 신발의 본질이 있다. 신발이 작다거나 발바닥이 아프다면 신발에 신경이 쓰이게 되고 신발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신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신고 있는 신발이 참된 신발이다. 만약 명품 신발을 신고 있다면 신발에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하고 도둑맞지 않도록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런 경우는 신발을 신은 것이 아니라 신발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신발을 신은 것이 아니라 신발에 신겨진 것이 된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도 마찬가지이다.


신발을 신은 당사자는 자기가 신은 신발을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신발을 바라보는 사람은 신발은 물론 신발의 주인이 거쳐 온 평안이나 고난의 역사성을 본다. 사물이 가진 본래성으로서의 역사성을 보는 자가 바로 시인이다. 시인은 사물의 본질을 응시하는 자이다. 본질을 응시하고 해명함으로써 사물에 연민을 보내는 자이다. 시인은 드러난 사물의 틈 사이로 보이는 드러나지 않는 이력과 역사성을 통찰한다.


박경한 시인의 시 <친구의 신발>에서 ‘친구’는 그가 연민하는 사람들이다. 힘든 작업에 찌들려 있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문면 상으로만 노동자이지 힘든 삶을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친구라는 말 속에는 함의되고 있다. 친구는 먼 길을 걸어왔다. 먼 길은 험하고 지루하고 지치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자동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두 발로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이 시인의 친구이다. 그의 신발은 옆구리가 헤져 있다. 험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친구의 남루한 육신과 그 육신이 짊어지고 있는 육중한 삶을 떠받치며 몸의 일부가 되어 먼 길을 걸어온 신발은 ‘군데군데 세월에 할퀸 자국’이 남아 있다.


시인은 화자의 입을 빌려서 친구의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혀”있을 것을 짐작하면서 안타까워한다. 화자는 연민하면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높은 곳을 향하여 있는 자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복사꽃 피는 날/지상의 헤진 신발 가지런히 벗어놓”자고 한다. 신발을 벗어놓는다는 것은 지나온 길을 잠시 중단하고 정리한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출발점에 나서게 됨을 의미한다.


화자는 멀리서 반짝이는 별(희망)을 바라보면서 “아직은 내일을 이야기 하자”고 한다. 여기서 ‘아직은’이라는 시어는 포기가 아니라 도전을 암시하고 있다.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기회를 의미하고 있다. 어떻게 하여 기회가 남아 있다고 화자는 확신하는가? 친구도 시인도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자산 중에서도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들 앞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시간 속에 구원이 있다고 화자는 믿는다. 미래는 곧 구원인 것이다. 미래는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구원 또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시인은 확신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작의 계절은 봄이다. 그래서 구원을 향해서 나서는 날은 곧 “복사꽃 피는 날”이 된다.


신발은 신발 주인의 삶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그것도 추상하거나 사상된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빛 속에 드러내는 실록이다. 실록도 어둠 속에 묻혀 있다면 매장물에 불과하다. 빛 속에 드러나야만 실록으로서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빛 속에 드러나게 하는 자가 바로 시인이다. 극한의 궁핍과 좌절 앞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 구원을 바라볼 수 있는 자가 시인이다. 현실에 발 묶여 있으면서도 시선만은 저 높이 돋아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구원을 노래하는 자가 시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곧 희망이다.

 

 

 

<약력>

 

칠곡 왜관 출생

왜관초등(47회) / 순심중(17회)

시인(구상 선생 추천으로 1984『현대시학』등단)

철학박사 / 대구한의대 교수(현)

구상문학관 시창작교실 지도강사(현)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지도교수(현)

대한철학회장 / 한국동서철학회장/새한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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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덕 기자(cg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