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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12] 고향 가을-임계자 시인[칠곡인터넷뉴스]

김주완 2008. 10. 4. 14:28

2008-10-04 오전 8:54:58 입력 뉴스 > 문화&영화소개

고향 가을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12)>

 

 

 

고향 가을

 

 


누구나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기억이 그리움이나 시름으로 나타날 때 향수가 된다. 바쁘고 활기차게 살아갈 때는 향수가 살아날 겨를이 없다. 삶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삶의 수면 위에 홀로 떠올라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기회가 생기면 사람들은 으레 향수에 젖어든다. 현실에 대한 회의와 좌절이 크면 클수록 향수도 커진다. 고향이 도시이거나 시골이거나 섬이거나 산골이거나에 상관없이 모두가 향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은 더욱 애틋하고 아련한 향수를 앓게 된다.


고향을 떠올린다면 어느 계절이든 그립지 않은 계절이 있겠는가마는 그 중에 가을이 가장 정감어린 계절일 것이다. 숨 막히던 열대야가 어느 날 문득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가을이 오는 신호를 감지한다. 이때쯤 두고 온 시골 고향의 가을이 기억 속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거기 산과 들과 시내가 있다. 산꼭대기에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면 들판엔 누렇게 고개 숙인 벼 이삭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저공비행을 하던 고추잠자리떼가 까마득한 높이로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오르기도 한다. 살찐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훌쩍훌쩍 자리를 옮겨 앉기도 한다. 낙엽 진 단풍잎 몇 개쯤 살그머니 떠내려가는 시냇물엔 피라미 떼가 저들대로 바삐 헤엄쳐 몰려다니기도 한다. 도랑이나 수로 같은 곳, 물이 고여 국해가 되어있는 곳에는 살찐 미꾸라지가 꿈틀거리기도 한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기대어 자리 잡은 마을은 맑은 빛살 아래 그림처럼 아늑하다. 마을 안길로 엇비스듬하게 대문들이 달려있는 농가에서는 참깨나 콩을 털고 있다. 평상 위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가 자근자근 말라가고 두엄더미 근처에서는 똬리를 깔고 앉은 누렁호박이 터질 듯한 배를 드러내고 있다. 붉게 익은 감이 높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올망졸망하게 달려있다. 간혹 개 짖는 소리에 놀란 새들이 푸더덕 저쪽 나뭇가지로 날아가 앉는다.


기억 속에 있는 시골 고향의 정경은 대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경이 그리워지는 것은 정경 그 자체 때문만이 아니다. 그 속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우리들 각자의 유년이 있기 때문에 향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정경의 곳곳에 소꿉친구 순이나 혁이의 기억이 묻어 있다면 못내 그립고 아쉬운 고향이 될 수밖에 없다.


낙동문학회 부회장 임계자 시인은 고향의 가을을 그녀의 기억 속에서 다음과 같이 한 편의 시로 끄집어낸다. 그것은 곧 시적 회상이다. 시적 회상은 대뇌피질에 남아있는 흔적의 의식화라기보다는 마음 깊숙이 젖은 채로 저장되어 있으면서 수시로 떠올라 와 사람의 전신을 마비시키는 정서적 마취에 가깝다.


누우런 들판

논둑길 사이를

풀줄기에 메뚜기 꿰어 달리던

추억 속 고향 가을


들 안길 지나서

탱자나무 울타리 보이면

앞마당 석류가 함박웃음으로

싱그럽게 맞아주고


담벼락 잠자던 순덕이

꼬리 흔들며 반겨주고

사납게 울부짖는 거위들도

합창 노래 시작하네


문턱을 친구 삼아 기대어

누가 왔냐 하시던

주름진 어머니 모습


쇠여물 솥 아궁이에서

묻어둔 군고구마 냄새


이제는 볼 수 없는

먼 추억 속으로

고향 가을을

그리워합니다


         ― 임계자, <추억 속 고향 가을> 전문


시인은 시각 이미지와 후각 이미지는 물론, 청각 이미지와 운동 이미지를 아주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풀줄기에 메뚜기를 꿰어 달리는’ 것은 운동 이미지이고 ‘강아지와 거위의 울음소리’는 청각 이미지이다. ‘누우런 들판’, ‘탱자나무 울타리’, ‘석류의 함박웃음’ 등은 시각 이미지이고 ‘군고구마 냄새’는 후각 이미지이다.


이 시는 어렵지 않다. 그저 읽어가는 대로 한 폭의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추억 속에 담겨 있는 고향의 가을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시인은 그때 그곳의 고향 가을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의 중심에는 “주름진 어머니 모습”이 있다. 어머니는 이미 타계하셨을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의 추억 속에 있는 고향의 가을 풍경 속에는 어머니가 여전히 생존해 있다. 어머니는 시인 개인의 어머니일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이다. 이 시의 배경인 시골은 이 나라 도처에 산재해 있는 농촌마을이자 우리 칠곡의 목가적인 향촌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시는 독자의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가을은 모든 것이 가는 계절이다.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계절이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겨울의 한파를 이겨낸 뒤 다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돌아가는 계절 속에 어머니가 있고 가을의 문턱에 기대어 어머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들에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고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기다린다. 자식들의 안녕과 발전과 성공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곧 어머니의 표상이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고향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와 고향은 동의개념이 된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약력>

 

칠곡 왜관 출생

왜관초등(47회) / 순심중(17회)

시인(구상 선생 추천으로 1984『현대시학』등단)

철학박사 / 대구한의대 교수(현)

구상문학관 시창작교실 지도강사(현)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지도교수(현)

대한철학회장 / 한국동서철학회장/새한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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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덕 기자(cg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