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궁이 / 김주완
빨려 들어가면서 불은 비로소 불꽃이 된다
불붙으면 무엇이든 꽃으로 핀다
군불을 때면서 들여다 본 어린 날의 아궁이, 사루비아처럼 붉디붉던 아가리, 얼굴을 덮치던 화끈한 열기, 나는 그때 벌써 사랑의 정체를 보았다
나무란 나무는 모두
가장 밝고 뜨거울 때 꽃이 되어 분간 없이 달려간다, 어둠 속으로
굽이굽이 돌아서 나가는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어둠의
미로엔 흡입력이 센 여울이 숨겨져 있다
빨대의 비스듬한 꼭대기에는 굴뚝새가 와서 겨울 추위를 녹일 것이다, 점점한 붉은 꽃잎에서 얻은 맑고 높은 소리로 암컷을 호릴 봄을 맘껏 기다릴 것이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다시 피는 아궁이의 잿불 속에서
묻어둔 감자 두 알을 꺼냈다, 까맣게 탄 껍질이 숯이다
숯검정 껍질을 덕지덕지 벗겨내면 나올 뜨겁게 파삭한 속살이 당신의 연한 입술을 노리고 있다, 맹수처럼
구들장을 지나는 불꽃의 체열로 당신의 방은 따뜻한 법인데
다 타고 남은 재가 꿈꾸는 환생의 불꽃, 사랑의
거처인 아궁이가 식어가고 있다, 사라지고 있다
간빙기가 끝나고 소빙하기가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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