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겨울 대숲 / 김주완
발이 뜸한 거기는
염습을 하지 않은 채 굳어져 뒤틀린 시신들이
마른 몸으로 우수수 쌓여 있다
한때 푸른 기염을 토하며 대쪽 같은 화살을 쏘았을 것인데
흘리고 가는 곤줄박이의 깃털을 모아 새털구름을 짜거나
지나가는 바람을 불러 고담준론을 펼치며 칼칼한 득음을 했을 것인데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오래 전에 누설된 절의가 지금은 엇비슷이 넘어져 있거나
밑동에서 잘려 창백한 창날로 버티고 있다
고가의 적막한 뒤란은 역사의 뒤켠과 흡사한 법
언 숲을 헤치고
소리 없는 소문 하나 빠져나가면 잠시, 물결처럼 세상이 흔들린다
숱 많은 머릿결, 머릿결
꺾이지 않는 푸른 뼈의 내력을 가진
한때 올곧았던 자들은 모두 이곳의 필사본이다
그들은 언제나 개울을 등지고 뿌리를 뻗는다
할머니 하얀 무명치마처럼 사이사이 적설이 훤한 저녁이 되면
굴뚝 끝 연기들이 이리로 허리를 틀고
높은 가지에 살 붙이고 떠나지 못하는 가오리연
긴 꼬리가 파르르 오래 떤다
동지 추위에 언 채로
뒹구는 꿈들이 차고 뾰족하다
뼈 부딪는 소리를 내며 대숲이 마른 겨울을 붙들고 있다
흘림체를 모르던 생전의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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